가톨릭 뉴스
매체명 한겨레 
게재 일자 2019.08.26 / 23면 
“한복수의 입고 주님 곁으로 가시니 영원한 ‘한국 사람’”

[가신이의 발자취] 고명은 미리암 수녀님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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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칠순 생일을 맞아 생활한복을 차려 입은 고명은 미리암 수녀.
사진 작은빛 공동체


 
수녀님의 죽음을 통해 수녀님의 모든 삶은 주님께 봉헌되었고 속하였고 그리고 완성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의 어머니, 미리암 수녀님이 지난 17일 선종하셨습니다. 향년 79. 수녀님은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소속으로 한국 이름 고명은으로 불리길 좋아하셨습니다.

미리암 수녀님은 1941년 아일랜드 골웨이에서 태어나 69년 첫 서원을 하고 71년 한국으로 오셨습니다. 간호사이자 조산사로 목표의 성골롬반병원, 서울과 목포의 성골롬반의원 등에서 활동하며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쏟았습니다. 학대와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 치료를 거부당한 이들을 돌보며 그들의 어머니이자 친구이자 든든한 울타리로 평생을 그렇게 항상 함께 하였습니다.

특히 수녀님은 1978년 성매매 여성을 위한 ‘사마리아의 집’을 열었고, 1997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감염인 지원시설인 ‘작은 빛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가족들조차 외면하는 에이즈 환자들의 주검을 거두어주고 합동위령제도 지냈습니다. 200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을 때는 혹여 주민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알려져 공동체에 피해를 줄 것을 우려해, 평소 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입지 않던 수녀복 차림으로 시상식에 참석하시기도 했습니다. 최근 척추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해서도 꼼꼼하게 공동체 살림을 챙기셨으니, 마지막 순간까지 감염인을 위해 사셨습니다.

미리암 수녀님은 늘 목에 나무 십자 목걸이를 걸고 계셨습니다. 그 나무 십자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수도자의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수녀님의 겸손과 소박한 삶을 상징했습니다. 또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의 깊은 연대와 포용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받으면 더 열악하고 소외된 감염인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특별한 축일에 항상 함께 하는 공동체 식사에 수녀님은 와인 한잔을 곁들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한 모금을 마실 때마다 그 맛을 음미하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소소한 사도직의 나눔을 듣고 말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공동체의 오락시간은 수녀님에게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구성진 노래를 즐겨 부르셨습니다. 그분의 애창곡은 ‘갑돌이와 갑순이’었습니다. 수녀님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 고운 한복을 입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그 노래를 부르실 때면 수녀님은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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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은 미리암 수녀는 ‘서원 50돌 금경축일’을 닷새 앞두고 지난 17일 선종했다.
사진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수녀님은 맵고 짠 한국음식을 좋아하셨는데 특별히 피곤하고 먼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늘 매운 컵라면을 즐겨 드셨습니다. 수녀님의 홍차 사랑도 남달라서, 맛있는 홍차를 만드는 과정은 마치 예식처럼 공이 많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홍차와 함께 수녀님은 호밀 빵을 즐겨 드셨습니다. 종종 수녀님은 김과 생선을 굽는 석쇠에 흰 식빵을 구워 드시면서 토스터보다 더 깊은 구수한 맛이 나온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평생토록 늘 한결같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던 수녀님은 ‘서원 50돌 금경축일’(22일)을 앞두고 머리를 짧게 다듬으셨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한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미리암 수녀님은 한국의 문화와 예절을 존중하셨습니다. 설날과 추석의 상차림, 그리고 돌아가신 친구분들을 위하여 손수 제사상을 차리고 향을 피우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절을 올렸습니다. 한복을 사랑해서 특별한 행사 때에는 생활한복을 차려 입곤 했습니다.

선종하신 뒤 한복 수의를 입혀 드렸을 때, 마치 수녀님께서 “아! 이 옷 참 좋다!”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길에 꽃이 가득한 화관 안에 누워 계신 수녀님의 모습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우정숙/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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