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77호 2016.01.10. 12면 

[복음생각] 언제나 예수님처럼 / 염철호 신부

주님 세례 축일(루카 3,15-16.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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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음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세례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받는 것인데(마르 1,5),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께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라고 묻습니다(마태 3,14). 그러자 예수님은 “모든 의로움을 이루기 위해서”(마태 3,15) 당신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밝히십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마르코 복음서를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마르 10,35).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마련해 놓으신 잔을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마시게 될 ‘잔’은 우리 모두가 의로워지도록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 동산에서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신 바 있습니다(마르 14,36 루카 22,42와 마태 36,39도 참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르 10,39에서 “내가 받았던 세례”가 아니라 “내가 받는 세례”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당신의 세례는 한 번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걸어야 할 하나의 길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시작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를 용서받기 위함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 자체가 당신의 사명임을 드러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 바로 세례의 길임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의 의로움을 위해 당신을 십자가 제물로 봉헌하는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이 점이 바로 당신의 사명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가십니다. 하느님은 이런 예수님을 두고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세례를 받고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세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묵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기꺼이 자신에게 맡겨진 잔을 마시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잘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고, 영광스럽게 되기만을 바라며,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벗겨내어 줄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물론 무엇이 아버지의 뜻인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또 안다 해도 마셔야 할 잔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아버지께 “저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라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지막 기도는 언제나 예수님처럼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받은 세례는 진정 의미 있는 세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서 다시 한 번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잔은 과연 무엇인지 묵상하며, 그 잔을 기꺼이 받아 마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십사 하느님께 청합시다. 그렇게 우리가 기꺼이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해 나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