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02호 2016.07.10 4면 

[사회교리 아카데미] 정치와 참여

정치는 공동선 추구… 선한 의지로 동참

정치를 세속적인 부분이라며
멀리하는 신심 깊은 신자들
더 나은 세상 위해 참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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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조영남

 

간혹 신심 깊은 신자들 가운데 참다운 신앙인이라면 되도록 정치를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 정치란 세속적인 것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세속적인 것이다. 이 분들에겐 사제와 수도자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도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그분들 스스로도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 되도록 의사 표현을 자제한다. 그러니 특정 정당과 정파의 입장에서 사회교리를 왜곡하거나 사제와 주교를 향해서 ‘종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과는 결이 다른 분들이다.

어쨌거나 이런 신자들은 정치에 대해서 부정적인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나라의 교회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다. 오랜 박해와 순교의 역사 때문에 예전의 신자들은 되도록이면 국가 또는 정부에 맞서는 일을 회피했다. 더구나 프랑스 대혁명을 겪었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성향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이래저래 교회와 신앙인은 국가나 세속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배게 되었다. 실제로 일제 강점 아래에서도 교회와 신앙인은 적극적으로 독립 운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오랜 구교우 집안의 신심 깊은 분들은 예전 신앙인들의 태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직접적인 이유는 여러 언론매체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종편 방송의 보도나 토론 패널들의 정치에 대한 관점은 권력 투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관점은 정치를 어떤 정당이나 정파 또는 어떤 진영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영역으로 본다. 어떤 정치적 사안이나 정책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나 시민들에게 끼칠 영향보다는 특정 정치인이나 집단의 사적인 이익을 위한 싸움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치는 언제나 말싸움이 난무하는 자리이고, 그까짓 거 이놈이 하나 저놈이 하나 똑같은 것이며, 정치하는 사람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은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치를 이렇게 본다면, 사실 신앙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거나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정치를 떠나서 살 수 없으며 오히려 정치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또 정치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 담배나 소주 가격을 결정하는 것도, 또 더 크게는 나의 정년 시기를 정하는 것도 정치가 하는 일이다.

이렇듯 정치는 공동체의 자원과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며 동시에 그것을 위한 공동의 의사결정과정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회에서 가장 큰 공동체인 정치공동체는 다른 작은 공동체를 도와주는 방식으로만 행동해야 한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러한 원리를 ‘보조성의 원리’라고 한다. 그리고 정치공동체는 다른 모든 공동체들의 공동의 선익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이를 ‘공동선의 원리’라고 한다. 그러기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정치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된다”(「사목헌장」 74항)고 가르친다. 바로 이런 뜻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는 흔히 폄하되기는 하지만,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매우 숭고한 소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복음의 기쁨」 205항)라고 가르치신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자신의 것을 내어놓음으로써 당장 굶주리는 이들에게 빵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제도와 법률을 만들고 고쳐서 굶주리는 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이다. 권력 투쟁이 아니라 공동선의 실현으로서의 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참다운 신앙인과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참여해야 한다. 더럽다고 피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세계의 건설에 진력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복음의 기쁨」 182항)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가톨릭대 신학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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