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29호 2017.01.22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가난하고 겸손한 이들의 참행복

연중 제4주일(마태 5,1-12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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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인리히 블로흐 작품 ‘산상 설교’.

 

성경은 가난한 이들의 행복에 관하여 자주 언급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 봉독한 스바니야 예언서는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에게 의로움과 겸손함을 찾으라고 권고합니다(스바 2,3). 여기서 겸손한 이들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아나빔”으로 가난한 이들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나빔, 곧 가난한 이들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를 ‘겸손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이 말하는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오직 그분께 의지하며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고도 표현되는 그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스바 3,13).

오늘 복음에 나오는 ‘참행복 선언’은 이러한 가난한 이들의 특징을 더욱 상세히 묘사해 줍니다. 먼저, 그들은 영적으로 가난한 이들입니다(마태 5,3). 우리말 성경에서는 “마음”으로 번역하지만 그리스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영이 가난한 이들”입니다. 영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스바니야 예언서가 이야기하는 겸손한 이들입니다.

이렇게 가난한 이들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 세상의 죄 앞에서 슬퍼합니다. 또한 온유하여 다른 이들의 짐을 대신 짊어집니다(마태 5,5; 12,28-30 참조). 언제나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며, 자비로운 모습을 지닙니다. 마음이 깨끗하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아가며(마태 15,15-20 참조) 분열이 아니라 평화를 이룩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때문에 박해를 기꺼이 참아 받습니다. 이렇게 보니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철저히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입니다.

‘참행복 선언’은 이처럼 가난한 이들이 진정 행복한 이들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늘 나라를 차지한다는 것은 약속된 땅을 차지하는 것, 곧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을 영원히 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나중에 상속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이미 그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5,3). 하늘 나라의 행복은 나중에 가서야 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누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땅의 시각에서 볼 때 슬퍼하고, 박해받아 고통 속에 사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이들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늘 나라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늘 나라를 온전히 차지하는 것은 종말에 가서이지만 가난한 이들은 이미 하늘 나라에 속한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상속받게 될 하늘 나라가 당신을 통해서 이미 가까이 와 있다고 선언하십니다(마태 4,17). 그러면서 이 나라를 차지하려면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가난한 이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슬퍼하며, 온유하여 타인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의로움에 목말라하며, 자비로운 사람으로 살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평화를 이루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생겨나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것이 참된 회개의 삶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가난한 이로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다시금 회개의 삶을 살아 하늘 나라를 상속받읍시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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