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02호 2016.07.10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연중 제15주일 (루카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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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큰 사람은 아버지 하느님을 엄한 하느님으로 이해하고, 자상한 아버지 밑에서 큰 사람은 하느님을 자비로운 하느님으로 받아들입니다. 간혹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하느님을 폭력적인 하느님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합니다.

인지학자들은 이런 것을 ‘프레임’, 곧 ‘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틀은 체험과 학습을 통해 습득되며, 문화나 환경,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틀을 나쁘게 표현하면 선입견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틀은 우리가 대상을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율적 도구입니다. 틀을 이용하지 않으면 새로운 대상을 파악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틀이 올바른지 계속 점검하지 않으면 선입견에 따라서만 생각하는 편협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대화는 서로의 틀을 깨트리고 확장하는 작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사실에 관해서는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지만, 누가 이웃인가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에게는 율법에 충실한 유다인들만이 이웃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닌 ‘이웃 틀’에는 이방인, 죄인, 사마리아인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라는 가르침에 충실했습니다. 그들의 이웃 틀에 따르면 영원한 생명은 오직 율법에 충실한 유다인들, 곧 자신과 같은 율법학자들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이웃 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이웃은 더 이상 출신성분, 율법 규정 준수 여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웃이었고, 자비를 베푸는 이는 누구나 이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원수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이웃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이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통해 이 점을 분명히 밝히심으로써 율법학자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이웃 개념, 곧 이웃 틀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그러면서 율법학자에게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명하십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누가 이웃인지 따지며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누가 이웃인지 논쟁하기 이전에 이웃이 되어주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복음은 율법학자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 틀’을 받아들였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에 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런 ‘열린 결론’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이웃 틀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 줍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의 이웃은 누구이며, 나는 다른 이들에게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지에 대해 묵상하도록 합시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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