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11호 2016.09.11 17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작은 아들’

연중 제24주일(루카 1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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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를 탈출하자마자 목이 뻣뻣해진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거슬러 황금 송아지를 만드는 죄를 짓습니다. 파라오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고자 하던 계획이 미루어졌는데,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뻣뻣함 때문에 하느님의 일이 방해받습니다. “완고함”과 “뻣뻣함”이 히브리어로는 같은 단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스라엘의 뻣뻣함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을 두고 모세에게 “네가 데리고 올라온 너희 백성”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탈출 32,7). 당신의 백성이 아니라는 선언이십니다. 그러자 파라오의 완고함 앞에서 하느님의 일을 충실히 수행했던 모세가 하느님께 아룁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백성이 아니라 하느님 “당신이 직접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이라고 말입니다(탈출 32,11).

이어서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맹세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죄만 놓고 보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기억하신다면,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스라엘을 용서하셔야 한다는 간청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다면 하느님은 맹세를 어기는 하느님이 되실 것이니, 당신의 이름을 보아서라도 진노를 거두어 달라는 간청입니다. 모세의 간청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내리기로 하신 진노를 거두십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당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로 결정하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던 자신마저도 용서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바오로 역시 용서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 목을 뻣뻣이 세우며 사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우리에게 작은 아들처럼 죄를 고백하며, 무한히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다가갈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당신의 계획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종종 우리는 스스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타인의 죄를 비난하고, 그들을 하느님의 구원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여기며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은 현대판 큰 아들인 우리에게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마음을 지닐 것을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의 경우 큰 아들이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 “열린 결론”은 우리로 하여금 큰 아들로써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초대합니다. 아니, 스스로를 큰 아들로 여기며, 작은 아들을 단죄하는 우리의 모습을 고발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실은 하느님 앞에서 작은 아들이었음을 떠올려 줍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자비를 입은 작은 아들들이었으니, 큰 아들처럼 굴지 말고 죄인에게 항상 자비를 베풀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 추석 연휴로 이번 호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은 연중 제24주일(9월 11일) 복음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9월 18일) 복음 내용을 함께 싣습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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