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86호 2016.03.20. 18면 

[복음생각] 십자가 위에 우리 구원이… / 염철호 신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루카 22,14-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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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머물 때 종종 겟세마니를 들르곤 했습니다. 지금도 큰 덩치의 오래된 올리브 나무들이 정원을 채우고 있는데 올리브 나무가 대략 1000년 정도까지는 산다고 하니 이 나무들 부모님 대쯤 예수님이 고뇌하며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올리브 산을 넘어 베타니아로 도망가지 않으셨을까?’

겟세마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베타니아는 예수님이 사랑하던 마리아, 마르타, 라자로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 베타니아에 머물며 예루살렘을 오갔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날 밤에도 베타니아까지만 물러나셨어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마치 베타니아로 물러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말씀처럼 들리곤 합니다.

우리의 인간적 모습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이겨내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십자가를 선택하십니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일찌감치 예수님을 배반했고,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체포되시는 장면에서 도망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죄도 없으셨지만 구약의 예언에 따라 다른 이들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셔야 할 어린양이었음을 깨달은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죄수 한 사람만이 예수님이 무죄하신 분임을 고백하며 구원을 청합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이에게서 하느님의 모습, 구원자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외면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무죄하심을 고백한 죄수도 인간적인 눈, 이성적인 판단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고백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이끄심 없이는 그 누구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에게서 우리의 구원이 나온다고 고백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1코린 12,3).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죽기 직전 예수님께 구원을 청한 죄수는 정말로 복된 인물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죄수 이야기를 통해 수난기를 읽는 우리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에게서 구원이 온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권합니다. 아무리 우리 죄가 크다 해도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면 예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하느님 나라, 곧 낙원에 데려가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주간을 시작하는 지금 주님의 수난기를 묵상하며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주님이심을 더욱 굳건하게 믿고 고백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유다나 다른 제자들처럼 배반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그 죄수처럼 주님께 구원해 주십사 매달리는 겸손한 용기를 청합시다. 십자가 위에 우리 구원이 달려 있음을 기억하며, 올해도 부활절을 잘 준비합시다. 이렇게 매년 성주간을 충실히 지내며 살아가다 보면, 죄인인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은 뒤 그분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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