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한겨레 
게재 일자 2019.06.15 / 13면 
허접한 어른의 삶, 잠시라도 신성을 찾고 싶어

무교인데 성당에 가는 이유


어릴 적 성당 풍경 속 중년여성들
고해소에서 한참을 머무르던 그들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돼

어른으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좁은 길로 접어드는 것
삶에 새겨지는 주름 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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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예배당 문이 등 뒤에서 닫히면 더럽고 분주한 현실로부터 단절되어 물속처럼 고요한 잘 고안된 상징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계에서 그것은 언제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른이 된 뒤에 가끔 혼자 성당에 간다. 신자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다. 어렸을 땐 꽤 오랫동안 엄마를 따라 성당에 다녔다. 그러다 머리가 어느 정도 큰 열일곱 무렵부터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발길을 끊었다. 누가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없다”고 말하게 된 지도 오래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가끔 성당에 가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하고 때로는 실제로 그곳에 가 있게 되는 것이다.


‘어른의 일’이었던 고해성사

어렸을 적 기억 속 성당에는 수많은 중년의 여성들이 있었다. 얼마 전 영화 <미성년>에서 염정아가 고해성사를 하며 울먹이는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어렸을 적 성당에서 보았던 그들이 떠올랐다.

어릴 적 고해성사를 하려고 줄을 서 있으면 유독 중년 여성들은 고해소에 한참을 머무르다 나오곤 했다. 고해소에 누군가 들어가면 문 위에 달린 램프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 그들이 들어가면 아무리 기다려도 불이 꺼질 줄을 몰랐다. 이윽고 문을 열고 나오는 그들은 대개 눈이 벌게져 있었다. 자신만 아는 세계에 빠져 있다가 느닷없이 바깥세계로 튕겨 나온 사람들처럼 눈빛이 멍했다.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커서 자신을 의아한 눈빛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 같은 어린아이의 시선 따위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그런 얼굴로 성당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신부님이 준 보속 기도를 하면서 또 흐느꼈다. 조용한 성당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울렸다. 그들은 모두 혼자였다.

어린 내게 그 풍경과 얼굴들은 오랫동안 ‘어른’의 것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죄나 내면의 번뇌 같은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어린아이일 뿐이었고 내게 고해성사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으니까. 내게 가장 신기했던 것은 우선 그들이 고해소 안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단 말인가?

나는 고해소 앞에 줄을 서서 1번, 2번, 3번 뭘 말할지 마음속으로 되뇌고(고해성사에서 죄는 적어도 3가지 이상은 고해야 한다고 배웠고, 고해실 안에서 고할 게 없어 버벅거리면 안 되니까), 내 차례가 되면 고해실로 들어가 벽에 쓰여 있는 순서 그대로 “고해한 지 ○달 되었습니다”라고 말한 뒤 곧바로 “엄마 말씀 안 들었고 동생을 괴롭혔고 친구를 미워했어요” 따위의 말을 어색하게 읊고, 후다닥 그 이상한 공간을 빠져나오곤 했다. 어릴 적 성당에서 행하던 많은 의례들이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고해소에서 죄를 고하는 문장들을 말하던 순간의 공기도 그렇다. 나는 ‘준비한’ 죄가 세 가지밖에 없고 그것은 고작 세 문장 정도밖에 안 되었으므로 최대한 천천히 길게 늘여 말해야 했다.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어눌한 말투, 미리 준비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진실한 뉘앙스, 성당에서 의례를 행할 때 으레 갖춰야 할 경건한 태도를 연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해소라는 건 그러니까 어린 내게 정해진 형식대로 뭔가를 수행해야 하는 긴장되는 공간일 뿐이었다. 더구나 그 안에서 그런 괴이한 형식으로(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구멍이 숭숭 뚫린 미닫이창이 달린 가림막을 사이에 둔 채) 신부님과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은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할 불편하고 어색한 사태였다. 희한한 것은, 그 모든 형식에 따라 준비한 것을 억지로 수행하는 내게도 아주 가끔 울컥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어른의 마음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아마 그것은 그저 어린이가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으앙 울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반사작용이었을 테지만. 아무튼 오랫동안 내게는 성당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 불가해한 어른의 풍경 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혼자의 일이었다.


경건함 속에 앉아 있으면

지금도 그때 보았던 중년 여성들 각자의 번뇌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 나는 가끔 성당에 가 그 경건함 속에 앉아 있기만 해도,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나 “평화를 빕니다” 같은 말만 들어도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성인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미사 내내 울음이 눈 밑에 걸려 있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거룩한 멜로디의 음악 때문인가,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인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침 댓바람부터 거기에 가서 어색하게 앉아 있는 내 모습 때문일까? 어릴 적 의미 없이 보아 넘겼던 미사곡의 모든 결과 사람들의 실루엣이 이상하게 선명하게 각인되었고, 미사 차례와 기도문의 말 하나하나가 귓속으로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이후 아주 가끔씩 성당에 갈 때마다 조금씩은 늘 그런 감정을 느꼈다. 특히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빈다”고 말할 때와 “내 탓이오” 하며 가슴을 칠 때는 언제나 그랬다. 낯모르는 이에게 이유 없이 평화를 빌어주다니! 모두가 내 탓이라고 말하며 제 가슴을 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가.

어른으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좁은 길로 접어드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점점 더 범위를 좁히며 내가 상처받지 않고 적응하기 편한 서식지를 만들어가며, 더 이상 내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고, 몇몇 사람과 사물들하고만 관계를 맺지만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줄곧 일어나 삶에 새겨지는 주름들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절망 가운데 매일 눈을 떠 하는 일이라곤 새로 업데이트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팔로잉 목록을 무한히 순회하는 것, 낮에 번 돈을 저녁에 쓰고 저녁에 한 일을 낮에 후회하는 것, 기껏해야 고수익 노예가 되고자 발버둥치는 것, 티브이와 인터넷을 먹어치우며 연예인과 정치인을 욕하고 내일이면 기억에서 사라질 뉴스들을 소비하는 것, 동물과 지구에 온갖 죄를 저지르고 일주일 만에 양팔 가득한 쓰레기를 생산하는 것 정도다. 그 끝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홀로 맞는 죽음뿐이다.

예수도 성경도 사후세계 같은 것도 믿지 않으면서 성당에 가는 마음은, 그런 가운데 허접한 내게서도 신성을 찾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육중한 예배당 문이 등 뒤에서 닫히면 더럽고 분주한 현실로부터 단절되어 물속처럼 고요한 잘 고안된 상징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계에서 그것은 언제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조동익의 1994년 노래 ‘엄마와 성당에’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곱게 쓴 미사보 손때 묻은 묵주/ 야윈 두 손을 모아 엄만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셨을까/ (…) 엄마와 성당에 그 따듯한 손을 잡고/ 내 맘은 풍선처럼 부는 바람 속에 어쩔 줄 모르네’

이제 어린아이는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성당에 가 있다. 궁금했던 엄마의 기도는 그렇게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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