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환 신부(모라성요한성당 주임)
요한 6,22-29



 

찬미 예수님!

어느 날 마산교구 소속 이제민 신부님께서 쓰신 글을 읽다 하느님께서 힘을 사용하여 정의와 평화를 심으려고 한다면 결국 인간의 힘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는 부분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추어져 한참을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자면 누구나 한번쯤은 던져 볼만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왜 세상의 어둠에 대해 하느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당신의 권능으로 이 시끄러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실 수는 없는가?’, ‘굶어 죽어가고, 불평등이 만연한 이 세상을 당신의 권능으로 해결할 수 없는가?’ 부족한 우리의 이성으로는 정확한 답을 얻어낼 수 없는 것 같은 이 질문들이 신부님의 글을 읽으면서 함께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던지는 많은 질문들 앞에 하느님과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를 먼저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무언가를 얻길원합니다. 각자가 처한 현실과 밀접한 그 무언가를 얻길 갈망하며 주님께 많은 기도를 바칩니다. 물론 절대 잘못된 기도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드린 구절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다른 모든 것을 곁들여 받기 전에 먼저 갖추어야 할 신앙의 덕은 언제나 첫 번째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26절에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빵의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표징에서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능을 보았습니다. 그 권능을 인정했기에 카파르나움까지 배를 타고 찾아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진짜 속내를 꿰뚫어 보셨던 겁니다. 그들이 당신의 권능을 믿는 것은 예수님도 인정하시지만 그토록 쫓아다니는 까닭은 당신을 통해 더 많은 현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지적하십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묻곤 하는 세상의 어둠, 끊이지 않는 전쟁과 범죄, 굶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인권유린의 상황 등 그 많은 것들이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묵상을 해본다면 오늘 주님께서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신 그 말씀 앞에 자연스레 마음의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것을 생각할 때 나쁜 생각들, 행동들이 나옵니다. 나쁜 것들은 선한 것, 정의로운 것의 가치 추구보다는 수단과 방법에 상관없이 내가 이익을 보면 된다는 생각을 먹고 자랍니다. 그것은 국가의 이름으로, 이념의 이름으로 또 다른 이름으로 포장되어 교묘하게 세상의 어둠으로 자라납니다.

앞서 인용한 신부님의 글 중에 남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는 날 세상의 전쟁은 사라질 것이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것이란 바로 이런 신앙의 자세입니다. 세상의 아픔, 세상의 어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하느님께 질문을 던지는 우리는 이제 그 질문의 방향을 하느님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힘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회개의 눈물로 이끌고 있는지는 지난 사순시기를 지내본 교우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시시라 생각합니다. 또한 주님의 부활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나의 길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잘 아실 겁니다. 오늘날의 세상이 보여주는 수많은 부정적인 현실 앞에 우리가 믿는 십자가와 부활이 치유의 약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는 것에 우리가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 가득한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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