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도(가톨릭성서사도직)
마태 18,21-35




 



다시듣기가 안되시는 분은 바로듣기를 선택해주십시요


아프리카에 마을에 죄 지은 사람이 생기면 그 죄를 어떻게 다스리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죄 지은 자를 마을 한복판 광장에 세우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죄인을 중심으로 큰 원을 이루며 둘러섭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한마디씩 외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외치는 말의 내용이 의외입니다. 죄를 지어 가운데 선 사람이 과거에 했던 좋은 일들입니다. 어린아이까지 빠짐없이, 과장이나 농담은 일절 금지되고, 진지하게 칭찬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죄를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칭찬이 가지고 있는 힘 그리고 중요성에 관한 말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반대로 칭찬을 받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칭찬이 왔는데도 좋은 말이 와도, 그것이 어색하고 쑥스러워 또 겸손하지 못한 것 같아서, 거부하고 받아주지 못하는 것, 이것 역시 우리들의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또한 남의 도움을 받는 것에도 어느 정도 거부감이 있습니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번거로워지는 것 같아 불편하고, 막상 상대방은 이미 잊은지 오래인데 마음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신경 쓰이는 것이 우리입니다.
 

잘 주고, 잘 받는 것”, 사실 이것만큼 중요한 삶의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잘 주고, 잘 받는 것에 있어서 어느 것이 먼저일까? 여러분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문제는 봉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봉사를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지치고 포기하게 됩니다. 가끔 성당에 가기를 두려워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왜 그러십니까?”라고 여쭈어 보면, “성당에 가면, 이 일 해라, 저 일 해라. 신부님, 수녀님 뵙기가 두렵다.”는 것입니다. “봉사를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야, 당신의 모든 것,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까지도 모조리 내어 주실 수 있으시지만, 우리는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주기 위해서는 받은 것 또한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주는 것보다 잘 받는 것이 먼저이고, 잘 받은 사람이 잘 줄줄도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베드로의 물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입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면서 비유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자기 종들과 셈을 하는 임금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간단하게 나누면,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째, 임금에게 엄청난 빚을 진 종이 엎드려 애원하자, 임금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부채를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두 번째 그 종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잊고, 자기에게 조금 빚진 동료가 집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둡니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용서, 한없는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이 말만 떼어서 본다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저런 용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비현실적인”, “바보가 되라는 말인가?” 그런데 용서를 받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불가능한 일만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적은 이렇게 우리 삶 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을 체험한 사람에게 주는 것은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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