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신부(좌동성당 주임)
루카 10,25-37




 


누가 내 이웃인가?

 

부산 가톨릭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은 핵가족시대를 넘어서 독거노인 뿐 아니라 젊은세대도 일인가구 세대가 대세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앞뒤옆 집이 중요하고, 어떤 이웃이 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더불어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기쁠 , 기쁨을 함께 나누고, 음식을 함께 나눌 때 참으로 기쁨을 실감하거나 체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아프거나 슬플 때, 도움을 청하거나 위로할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인생에 산다는 의미를 전혀 못느낄 것입니다.
 

오늘 율법교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었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율법교사인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씌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하고 되물었습니다. 율법교사는 온정성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합니다라고 옳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율법학자는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려고 그렇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예수님께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초죽음이 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마침 한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쓰러진 그 사람을 보고는 재수없다는 식으로 그를 피해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다음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강도맞은 유대인은 점점 힘이빠져 살려달라고 소리칠 힘도 없었습니다.
 

이 때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발견하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초주검이 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음날 일반노동자 이틀 품삯인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어 그 환자를 돌보게하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 지불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그 율법학자에게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율법학자와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모두는 당연히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같은 동족이면서도 원수지간 이었습니다.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점령하면서 이방인들과 혼혈정책을 썼고, 따라서 유일신 야훼 신앙은 왜곡되고 변질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는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이 철저한 원수지간 이었어요. 그런데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은 강도 맞은 유대인을 도와주지 않고 피해 갔는데, 원수지간인 사마리아인이 강도맞은 유대인을 가엾게 여기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여기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참된 이웃사랑,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조건이 되는 올바른 이웃사랑은 민족적, 종교적 이해관계를 떠나 지금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 불행한 사람에게 자비를 조건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선입관이나 어떠한 판단없이 불행한 사람을 돕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독거노인을 비롯해서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상황을 달리 표현하면 내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이웃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물론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위해 강도 맞은 이웃처럼 돈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관심있는 따뜻한 인사말 한마디, 시간을 내어 외로운 노인의 말동무 되어드리기, 아픈 이웃을 돕기, 내가 만든 반찬이나 전병을 나누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도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많아질 때, 천국의 이웃들도 많아지고, 현재의 우리사회도 한층 더 평화롭고 밝아 질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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