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의 참된 연대를 위한 2017년 부산교구 신학생 농촌 체험 활동 후기
땅에서 배우는 겸손
김성중 베드로 / 학부 4년, 하단성당
방학을 하루 앞둔 신학교에서의 학기 마지막 밤, 이전처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곧바로‘농활’이라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그 활동이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체험한다는 기대보다는, 힘들었던 시험 기간을 바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이기적인 생각과 함께 고된 노동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농활 첫날, 논에서 피를 뽑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피와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작업 내내 허리를 굽히고 땅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는 이런 동작에서 땅이 말해주는 중요한 가치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고되고 허리 아프고 보잘것없는 일,‘이 시간이 지나 빨리 쉬고 막걸리나 마셨으면’하는 정도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문득 겸손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이 떠올랐다.‘땅을 보면 겸손을 알 수 있다. 땅은 늘 모두에게 밟히지만 모든 것을 지탱하고 모든 것을 낳는다.’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바라보았다.‘나는 겸손한 사람인가? 땅으로 내려오신 주님의 겸손을 따라 사제가 되고 싶다’하면서 방학 중의 편함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을 그리워하는 나는 정말 위선적인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작업 내내 하느님께 기도했다.‘하느님 이 피를 뽑으면서 제 안의 위선과 교만, 이기심, 온갖 나쁜 것들을 함께 뽑게 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이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 뽑는 일은 언양 회장님 말씀대로 핵심적인 일은 아니지만 안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핵심적인 일이 아니라서 경시되기 쉽지만 하지 않으면 핵심이라 생각했던 일들마저 망치게 되는 일, 핵심적인 일을 밑에서 받쳐주는 참으로 겸손한 일, 소리 없는 일이다. 생산직, 건설직, 환경직 등에 종사하시는 분들, 특히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이 땅에 농촌에 남아 정당한 방식으로 농사짓는 어르신들이 바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이 사회의 피를 뽑으시는 귀한 일꾼들이 아닐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만 안 하면 안 되는 일에는 너무나 무관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을 한국의 청년들은 기피하기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폭력적이고 비인격적인 대우와 이를 막지 못하는 법의 병폐는 너무나 이기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본격적인 방학을 시작하는 나에게 무의식 속에 노동을 기피하려 했던 안일한 마음은 농활과 함께 완전히 변했다. 좀 더 낮은 마음으로 보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땀 흘리는 하늘나라의 농사꾼이 되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