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산업화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좀 오래전에 참 괜찮은 영화 하나가 개봉되었다. 슬픈 현실을 아이들의 해맑은 시선으로 풀어내는 재미있고 슬픈 영화였다. 해서 본당의 학생들과 함께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예매를 위해 검색을 했는데 부산, 경남 지역에서 딱 두 극장만 상영하고 있었다. 원래 내 취향이 좀 특이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억지로 해운대에 있는 영화관까지 찾아가야만 했다. 우리 동네 근처에 그렇게 많은 영화관이 있는데 어느 한 스크린에도 이 영화가 걸리지 못했다.
문화 콘텐츠가 산업의 모습을 가지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흥행이 되는 영화(즉 수요가 많은 상품)를 더 많은 극장에 내 거는 것(공급의 확대)은 경제논리로 따지면 적절한 행동일지 모른다. 그러나 흥행이 되는 이유가 더 많은 공급, 즉 무지막지한 스크린 점유를 통해 문화 소비자(관객)의 선택의 여지를 없애 버려서 생기는 데 있다면 이건 좀 다른 문제가 된다. 다른 것도 먹고 싶은데 모든 가게가 햄버거만 팔기 때문에 햄버거만 먹게 되고, 그래서 햄버거가 잘 팔린다면, 잘 팔린다는 이유로 그 햄버거를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칼로리만 높고 영양가는 별로 없는 문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은 문화가 산업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거대 자본이 문화라고 하는 시장을 차지할 때 우리는 편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 입맛도 거기에 길들여진다.
K-Pop 열풍이 대단하다. 예쁜 걸 그룹, 그리고 더 예쁜 보이 그룹이 온 화면을 현란하게 채운다. 어떤 걸 그룹은 어느 중소기업보다 매출 규모가 더 크단다. 그러나 저 뽑힌 연예인들의 그늘에서 인턴 시절(연습생 시절)만 보낸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자신의 음악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때로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 전혀 다른 음악을 주입당하다가 도태되어 버리는 현실이 젊은 노동자들 일반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