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와 우리밀 이야기

가톨릭부산 2015.10.08 05:42 조회 수 : 174

호수 2318호 2015.03.08 
글쓴이 조욱종 신부 

홍어와 우리밀 이야기

조욱종 신부 / 로사리오의 집 loucho2@hanmail.net

홍어 이야기는 사순절만 되면 언제나 생각난다. 홍어를 삭혀 회로도 먹고, 찜으로도 먹을 때의 그 독한 가스, 입천장 벗기는 그 화끈한 맛이란! 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싶을 지경이다. 부산에서 파는 홍어 요리들은 경상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약화시킨 것이라 그저 그런 정도이지만, 전라도의 제대로 된 홍어 맛이란 독특하다 못해 온 몸을 비틀고 정신까지 혼미하게 만든다.

그런 홍어를, 잔칫상에 빠지면 성의 없다고 욕먹을 만큼의 요리로 평가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만일 그 맛을 제대로 알려면 적어도 죽을 각오를 하고 7번은 먹어야 할 것이다. 홍어만이 아니라 우리밀 라면도 그러하다. 적어도 7번은 먹어야 우리밀의 그 순하고 은근한 맛을 이해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자극적인 수입밀 라면에 길들어진 입맛을 고치는데 겨우 7번 정도라면 너무나 쉬운 주문이다. 그러하듯이 홍어의 맛을 모른 채 죽는 것보다는 죽을 각오를 하고 7번을 먹어서 드디어 그 참맛을 아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이렇듯 참으로 내공이 강한 홍어와 우리밀이다. 썩어야 제맛을 내는 홍어, 외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우리밀! 그 숱한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우리 한국천주교회가 바로 홍어 맛이고, 우리밀 정신이 아니던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교하던 어느 외국인 선교사가 미국인들에게 한국교회를 이렇게 소개하였다.“한국의 속담에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그 작은 고추입니다.”우리 한국천주교회는 이렇듯 작지만 정말 맵다. 내공이 대단한 맛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는지. 내공을 쌓아야 할 이 사순 시기, 내공이 강한 사람은 말없이 실천하며 흔들림 없이 정진한다고 했던가.

번호 호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16 2311호 2015.01.18  고흐의 무덤 조욱종 신부  222
15 2317호 2015.03.01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다 조욱종 신부  104
» 2318호 2015.03.08  홍어와 우리밀 이야기 조욱종 신부  174
13 2319호 2015.03.15  수목장 관찰기 조욱종 신부  334
12 2326호 2015.05.03  민주화의 거리 조욱종 신부  103
11 2327호 2015.05.10  부산역과 정로환 조욱종 신부  208
10 2328호 2015.05.17  예수님의 경제론 조욱종 신부  103
9 2335호 2015.07.05  문화의 뜻과 의미 조욱종 신부  390
8 2336호 2015.07.12  수호천사가 되고 싶다 조욱종 신부  117
7 2337호 2015.07.19  여행의 계절, 휴가 조욱종 신부  116
6 2344호 2015.09.06  잡초의 재발견 조욱종 신부  248
5 2345호 2015.09.13  정치적 판단, 신학적 판단 조욱종 신부  118
4 2346호 2015.09.20  반환의 주역, 순교자의 후예 조욱종 신부  130
3 2352호 2015.11.01  위령성월을 시작하며 조욱종 신부  172
2 2353호 2015.11.08  변하지 않는 것들과 변하고 마는 것들 조욱종 신부  194
1 2354호 2015.11.15  속된 표현과 상식적인 반응 조욱종 신부  410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