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문화들(2) - 감정노동

가톨릭부산 2015.10.08 05:56 조회 수 : 86

호수 2332호 2015.06.14 
글쓴이 김상효 신부 

나쁜 문화들(2) - 감정노동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화장실은 복도 오른쪽에 있으세요. 고객님!”,“오늘 삼겹살은 특별히 좋으세요. 손님!”,“커피시럽은 반대쪽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으세요.”… 어딜 가도 이런 식의 존댓말을 듣게 된다. 손님은 왕이라서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까지는 억지로 이해한다고 해도 저런 말들 속에 감춰져 있는 계급구조는 참 못마땅하다. 손님은 높고, 그다음이 화장실이나 삼겹살이나 시럽 따위고 제일 밑이 종업원 자신이다. 그러니 종업원은 손님도 높이고 화장실도 높여 불러줘야 하는 신세가 된다. 인간의 노동과 노동하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홀대받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이다. 이제 노동은 더 이상 물리적인 행위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노동하는 이의 내면의 감정과 열정까지 동원해야 하는 지경이다. 어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종업원이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도록 고객 응대 매뉴얼이 꾸려져 있다고 한다. 고객의 눈높이에서 주문을 받으라는 것인데 그런 과격한 친절을 당하는 손님이 맘 편할 리 없다.

우리가 매장에서 종업원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종업원의 프라이버시나 감정이나 자기의식의 내밀한 영역까지 드러내 놓기를 바랄 순 없다. 나는 과격한 친절을 구사하는 종업원을 만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저 종업원의 감정을 영업에 활용하는 매장의 방침이 싫고, 저 종업원을 닦달하는 위 간부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 싫고, 내가 저렇게 정형화된 친절에 혹해서 물건을 구입할 만큼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 같아 싫고, 업무시간이 끝난 후 홀로 내뱉을 저 종업원의 한숨 소리가 미리 들리는 것 같아 싫다.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면 불필요한 과잉노동도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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