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와 우리밀 이야기
조욱종 신부 / 로사리오의 집 loucho2@hanmail.net
홍어 이야기는 사순절만 되면 언제나 생각난다. 홍어를 삭혀 회로도 먹고, 찜으로도 먹을 때의 그 독한 가스, 입천장 벗기는 그 화끈한 맛이란! 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싶을 지경이다. 부산에서 파는 홍어 요리들은 경상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약화시킨 것이라 그저 그런 정도이지만, 전라도의 제대로 된 홍어 맛이란 독특하다 못해 온 몸을 비틀고 정신까지 혼미하게 만든다.
그런 홍어를, 잔칫상에 빠지면 성의 없다고 욕먹을 만큼의 요리로 평가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만일 그 맛을 제대로 알려면 적어도 죽을 각오를 하고 7번은 먹어야 할 것이다. 홍어만이 아니라 우리밀 라면도 그러하다. 적어도 7번은 먹어야 우리밀의 그 순하고 은근한 맛을 이해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자극적인 수입밀 라면에 길들어진 입맛을 고치는데 겨우 7번 정도라면 너무나 쉬운 주문이다. 그러하듯이 홍어의 맛을 모른 채 죽는 것보다는 죽을 각오를 하고 7번을 먹어서 드디어 그 참맛을 아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이렇듯 참으로 내공이 강한 홍어와 우리밀이다. 썩어야 제맛을 내는 홍어, 외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우리밀! 그 숱한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우리 한국천주교회가 바로 홍어 맛이고, 우리밀 정신이 아니던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교하던 어느 외국인 선교사가 미국인들에게 한국교회를 이렇게 소개하였다.“한국의 속담에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그 작은 고추입니다.”우리 한국천주교회는 이렇듯 작지만 정말 맵다. 내공이 대단한 맛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는지. 내공을 쌓아야 할 이 사순 시기, 내공이 강한 사람은 말없이 실천하며 흔들림 없이 정진한다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