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왜 샀어?(2)

가톨릭부산 2015.10.08 05:38 조회 수 : 72

호수 2313호 2015.02.01 
글쓴이 김상효 신부 

그걸 왜 샀어?(2)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십 년 쯤 전에 어떤 원로 신부님이 당신이 입던 점퍼 하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느 날 별일 없이 저를 불렀고, 당신의 옷장 문을 열어보라고 하시더니 점퍼 하나를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가을철에 입기 딱 좋은 커피색의 점퍼였습니다. 왜 그걸 저에게 주시는지, 그 옷이 어떤 옷인지 별 설명을 안 하셔서 저도 굳이 그런 것들을 묻지 않았습니다. 십여 년이 지난 요즘도 가을이 되면 그 점퍼를 즐겨 입습니다.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생각합니다.“그때 이 옷을 왜 주셨지?”매번 궁금하지만 그 원로 신부님을 만나서 굳이 사연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궁금증이 생기는 상황을 그저 즐기기로 했습니다. 옷에 사연이 향합처럼 붙어 있어서 옷을 입을 때마다 궁금함과 그 신부님을 향한 짧은 기도가 향기로 피어오르게 됩니다. 저의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의 시절을 지긋한 눈으로 쳐다보셨던 분의 옷이라 더 정이 가는 옷입니다.

상품 구매의 상황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광고의 각인,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 가격이 주는 솔깃함, 때로는 나의 근거 없는 공허함이나 불안감, 심지어 매장의 동선이나 음악 등에 의해 우리의 구매가 결정됩니다. 내가 물건을 구매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구매함을 당했다고 해야 옳을 상황도 많습니다. 매장에서 물건을 사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지만 정작 우리는 매번 누군가에게 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내가 가꾸어 놓은 내 삶의 문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미학 때문일 것입니다.

* 질문 : 물건의 가치가 물건 자체에 있을까요? 아니면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달려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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