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의 재발견

가톨릭부산 2015.10.08 06:03 조회 수 : 172

호수 2344호 2015.09.06 
글쓴이 조욱종 신부 

잡초의 재발견

조욱종 신부 / 로사리오의 집 loucho2@hanmail.net

내가 살고 있는 로사리오의 집에 오는 피정객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손질 좀 하시지.”산을 끼고 있는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마당이 넓어 풀들이 무성하기 때문에 한 마디씩 던지는 거다. 그렇다고 전혀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초기로 또는 제초제로 싹쓸이 제거를 하지 않을 뿐이다. 무성한 풀숲에는 좋은 잡초들이 아주 많이 자라고 있으니까 말이지.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바가지를 들고 마당에 나가 잡초들 중에서 환삼덩굴을 한 움큼 따가지고 와서는 깨끗이 씻어서 먹는다. 혈압을 낮춰주는 데에 이만한 잡초가 없다. 고들빼기, 질경이, 쇠비름과 비름은 무성하게 자랄 정도로 기다렸다가 효소를 담는다. 달맞이꽃과 개망초는 따서 잘 말렸다가 차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엔 어디서 날아왔는지 눈개승마가 자라고 있어서 군침을 흘리고 있다. 잡초의 재발견!

도시로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이 아버지의 과수원을 이어받아 가꾸다가 그만 쫓겨날 뻔했단다. 과수들 밑에 풀들이 키만큼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있었으니 게을러빠진 아들놈이 농사를 망쳤다고 아버지가 화를 낼 수밖에… 그런데 아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사 간청하면서 그해 결실을 맺을 때가 되어보니, 아 글쎄 아버지보다 더 많은 수확을 거두지 않았겠는가. 그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잡초 덕분이라고!

서로 같은 양분만 빨아먹는 단일 농작물들만 있으면 땅은 황폐해진다. 그러나 제각각 다른 양분을 먹고 다른 역할을 하는 다양한 농작물들이 섞여 있으면 땅은 비옥해지고 작물들은 서로 잘 큰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 이치로 만들어놓은 것이 하느님의 창조, 생태계의 질서이다. 게으름이 아니라 창조적 생태영성을 사는 태도, 잡초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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