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문화

가톨릭부산 2015.10.08 06:01 조회 수 : 79

호수 2340호 2015.08.09 
글쓴이 김상효 신부 

문화적 문화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파리라는 도시를 여행하던 때,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다. 인근 대학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하철 역사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연미복 아닌 청바지 차림, 화려한 조명이 아닌 침침한 지하철 조명(파리의 지하철은 대부분 깔끔하지가 않았다), 악기 케이스에는 지폐 몇 장과 동전들이 놓여있고, 그 옆에 마시다 잠시 내려놓은 커피가 놓여 있고, 자신들의 연주가 담긴 CD가 판매를 위해 쌓여 있었다. 분명 독특한 분위기였다. 연주자들은 과잉된 느낌으로 연주하지 않았다.‘저희를 보지 말고 지금 들리는 음악을 보세요.’라는 투로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의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별로 바쁜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 연주에 젖어들고 있었고, 가끔 지나가는 지하철의 소음도 그리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차지하고 있는 지하철의 공간을 놓고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모든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장소, 연주자, 음악, 관객, 하루의 피로, 일상에 문득 들어와 있는 누군가의 위로,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문화적 화폭을 만들고 있었다. 파리라는 도시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명동. 온 나라의 화장품 가게가 다 몰려 있는 것 같은 느낌. 거리에 판매와 구매 외에는 다른 것이 존재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서로의 소통을 위한 문화적 퍼포먼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실타래 사탕을 만들어 파는 노점상의 퍼포먼스에, 인근 고양이 카페를 홍보하는 고양이 인형 아르바이트생이 화장품 가게가 틀어 놓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그 자리에 행인들이 모여 즐거워하고 있었다. 겨우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참 팍팍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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