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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께 바치는 자비의 기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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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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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성녀 카타리나 기념일 강론

 

방어진성당 주임신부 김두유 세례자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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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4월29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시에나의 성 카타리나는 그녀의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1970년 10월 4일 교황 바오로 6세로 부터 교회 박사 칭호를 받았다.
 

여성으로서 교회 박사가 된 이는 교회 역사 안에서 몇 명 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모든 생활 체험에서 분명하고도 끊임없이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바쳐 하느님의 신비를 깊게 파고든 그녀에게는 너무나 적절한 일이다.
카타리나는 당시의 교황과 귀족들, 수도자, 상인들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썼다. 또, 교황과 피렌체 시민들 사이의 논쟁을 중재했을 때 암살 위기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도 받지 못했던 33살의 그녀에게 신비가, 중재자, 신학자, 설교자, 간호사, 교회 박사 등의
모든 호칭이 거룩한 월계관으로 주어진 것이다.
시에나의 카타리나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은 헤지오그라피라고 불리는 일종의 성인전으로서, 모범이 되거나 영감을 주는 인물에 대한 본받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공경하기위한 전기다.

 

이들은 많이 윤색되긴 했지만, 정열적이고 풍부한 언어를 사용하여 다소 어색하긴 해도 그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카타리나에 대하여 전해진 그리고 기록된 전승들은, 모두 함께 영향력 있는 14세기 여인의 모습을 20세기의 사람들에게도 전해 주어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찬미 예수님!
 

오늘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기념일입니다.

모처럼 성인 축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카타리나 세례명을 가지신 분들 축일을 친심으로 축하드리며

성녀의 도우심으로 신앙의 참된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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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계속해서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어제 복음의 끝부분이 겹칩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는 대전제를 두고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왜? 그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다니는가?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실까? 에 대한 답이

이미 예수님의 말씀에서 증명되어졌습니다.
 

“나는 ~ 이다”라는 표현으로 하느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내용을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고 표징이라고 말합니다.
 

기적은 우리들이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감각이고,

 표징은 영적인 눈으로 기적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숨겨진 뜻을 찾아볼 수 있는 차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신비라고 하는 우리들에게

 기적 같은 내려오심이지만, 표징으로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보는 영적인 눈입니다.
 

 기적을 찾는 사람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군중들이고,

참된 표징을 찾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도 눈에 보이는 것만 집착을 하게 되고,

그것이 참된 진리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신앙도 그저 한낱 군중심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것은

당신이 어떤 기적을 보여주는 쇼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믿어 결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존재로 변화시켜주시는 참 생명의 주인이심을

 아는 것이 참된 표징입니다.


 

 그래서 군중들에게 “이미 말하셨다.”고 전제하면서

 “믿음이 없다.”고 일갈하십니다.
 

더구나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라고 하여

기적에만 현상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군중이라는 것을 확증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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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은 분명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항상 도와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  앞에서 굶주린 백성들의 배를 채워주시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눈 뜬 장님들입니다.
 

백성들의 불쌍한 처지를 그래서, 자신들이 애원하는 목소리를

항상 들으시고 도와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한 백성들인데 불구하고,

 예수님만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면 하느님으로 고백한다는 조건인 것이나,

분명 예수님은 “나는 ~ 이다.” 표현으로 그 옛날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셨던 같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밝히셨어도

자신들이 하느님을 선택하겠다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젠 그런 잘못된 주도권을 분명하게 하십니다.
 

 ‘보고 믿는다’와 ‘보고 믿지 않는다.’라는 관점에서

군중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선택권을 행사하지만,

이젠 하느님이 주도권을 가지시고 선택한다는 뜻을 밝힙니다.
 

이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예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만이

예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표징을 보고 참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받아주실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세례를 받고 주님의 몸을 생명의 빵으로 받아모시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행동을 수반한다면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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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얘기하면, 여러분들은 살기 위해서 음식을 섭취해야만 합니다.
 

내 몸에 들어온 음식이 소화되어 나에게 영양분이 되고

 음식과 내가 완전 일치하는 것입니다.

음식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을 받아모시는 것은 내 안에 생명이

주인이신 예수님과 완전 일치하기에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는

 온전히 예수님을 드러내는 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왜 우리를 받아주시는가에 대한 내용은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밝히십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뜻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고,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리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더구나 3장16절에는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이,

특히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 목숨을 바쳐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느님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은총입니다.
 

우리가 이런 선물을 마다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도 잃지 않는” 것은 마치 “잃어 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나서시는 착한 목자이시에 예수님의 울타리 안에서 생명을 얻고

또 얻어 살아가도록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참된 믿음 안에서 주님을 찾는 사람들은 주님의 울타리에서

내쫓기는 일도 없을 것이고, 단 한사람도 제외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늘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원 불멸을 위해 온갖 애를 쓰지만 인간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끝장난다고 생각하면

 삶의 의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하는 허무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빵을 주심으로 인해

‘지금’ 살아가는 이유를 주신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듭니까?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몸은 살아야만 하고 살아가는 가는 이유를 주는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모든 끝이 아니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는 주님이야말로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생명의 빵을 먹는 우리들은 그야말로 ‘하늘에 재물을 쌓아두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영적인 눈을 뜨고

신앙 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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