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본당 행사

예수성심께 바치는 자비의 기도에 관하여
 


 

 

11441D08497E93E344EBFF찬미예수님!

 

 


오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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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부활 제 3주간 화요일 강론

 

방어진성당 주임신부 김두유 세례자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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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도 내용이 어려운 요한복음의 생명의 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군중들은 앞서 말씀드린 빵을 많게 한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신적 권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엘리사가 행했던 빵을 많게 한 예언자 범주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주님께서 빵을 많게 한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유다인들은 배고픔 해결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에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당신을 믿을 수 있게 표징을 요구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을 넘어 하느님의 관점으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은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주님께 돌아서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설명을 해주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도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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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도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한다.”(1코린1,22)라고 할 정도로

 군중들은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빵을 많게 한 표징을 일으켰는데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고 믿는 신앙도 중요하지만 ‘보지 않고도 믿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 큰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희가 보고’라는 말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선택할 이유가

자기들 의지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선택하셔서 당신 생명에로 이끄시는 주도권이 있는 것이지,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하는 격입니다.
 

 주객이 전도가 되면 그 어떤 것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충분히 표징을 보여주었지만 영적인 눈이 가려져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진리와 계시 사건을 못 보고 있고,

 더 큰 표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군중의 이런 태도는 이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모독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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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신앙인들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서 인간적인

관점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과 같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1베드5,8)


 

우리 신앙이 위협받는 현실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분히 유다인들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우리들도

 어떤 현상적인 사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숨은 뜻을 찾고 마리아처럼 곰곰이 묵상하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군중 심리에 따른 기이한 현상을 찾아다니는 잘못된 믿음의 형태는

 복음을 왜곡하기에 딱 좋습니다.
 

유다인들은 잘못된 선입견과 지식으로 말미암아

수님께서 보이신 표징을 직접 목격하고도

쉽게 믿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기에 더 많은 표징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믿음은 열린 마음이 요구됩니다.
 

 인간적인 고정관념과 개방되지 않는 마음으로는

주님의 표징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흔히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마음’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하듯이,

 아무리 증명 가능한 것일지라도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생성되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은 계속해서 요구하며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하고 묻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내용으로 짐작컨대 ‘만나’와 같은 굶주림을

해결만 하면 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나를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다는 사실을 생략한 채, 본질을 망각한 대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굶주림에 있는 것을 당신의 자비와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온대간대 없고,

자기들의 굶주림을 해결해주기만 하면 믿겠다는 조건적인 행태인 것입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준 이유도 사람을 사랑하신 나머지 손수 먹을 것을

 마련해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를 생명에로 이끄시는 분이

만나를 주신 분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나라는 음식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도록

베푸시는 하느님에게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조건을 내세워서 하느님을 믿겠다는 교만의 극치를

유다인들은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우리 일상에서도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오늘 하루만 살겠다는 근시안적인 생각입니다.
 

만약 만나를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았더라면 과연 군중들은

배고픔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를 주신다는 것은 하느님에게 모든 주도권이 있기에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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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들은 과거에 광야 생활을 할 때에

모세에게 많은 기적을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 기적을 보면서도 유다인들은 끝내 불평과 원망하며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과 권능을 믿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았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고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의도도 모르는 체,

배고픔만 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라며

여전히 믿음의 시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생명의 근원이라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는

 자기 계시를 드러내 보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자주 쓰이는 “내가 ~ 이다”라는 표현은

 탈출기 3장 14절에 나오는 모세에게 계시된 “나는 있는 나다”라고

 하는 하느님의 이름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다는 것을 명백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이 빵이라기보다 하느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결코 배고프지 않고,

결코 목마르지 않는 삶을 보장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믿은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더욱 사실 관계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를 두는 사람은 복되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선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행복만을 원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믿음에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참된 생명은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신앙의 눈을 가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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