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본당 행사

 

예수성심께 바치는 자비의 기도에 관하여

 

  •                                               
  • 찬미예수님!
    
    

    오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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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강론

    방어진성당 주임 신부 김두유 세례자요한

     

    축일:4월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마르코. 라틴어 Marcus.영어 Mark
    복음사가(福音史家). 그의 이름을 딴 마르코 복음서가 있다.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130년경 별세)에 의하면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이었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서 가르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충실히 기록했다고 한다
    (에우세비오, 교회사 3, 39,15).


    신약성서에는 요한 마르코라는 인물이 열번 나오는데
    요한은 이스라엘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그리스식 이름이다.
     


    그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 집에 그리스도 교인들이 모이곤 하였다(사도 12:12).
     


    바울로와 바르나바를 따라(사도 12:25) 45-49년경의
    1차 전교여행을 함께 했는데(사도 13:5) 키프로스까지 동행한 후
    그 다음 목적지인 소아시아의 주요지역 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사도 13:13).


    이에 바울로가 그를 못마땅히 여긴 나머지 50-52년경의
    2차 전교여행 때 동행하기를 거부하자 마르코는 사촌인(골로 4:10)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섬으로 가 전교하였다(사도 15:37-39).


    그러나 53-58년경의 3차 전교여행 때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울로가 에페소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르코는
    바울로 곁에 있어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골로 4:10, 필레 1:24).
    한편 바울로가 마지막으로 로마에 투옥당해 있을 때
    디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도록 부탁한 적이 있다(2디모 4:11).
     


    베드로의 일행으로 로마에 있었던 마르코는 베드로에게
    ’나의 아들’(1베드 5:13)이라 여겨질 정도로 친근한 동료였다.


    그리스도교 회화에서 마르코는 대개 복음서를 지니고
    날개 달린 사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사자의 모습은 세례자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르 1:3)로
    표현한 데서 유래하는데 예술적 전승은 그 소리를 사자의 울음으로 비유하였다.
     


    날개는 네 개 달린 ’생물체’에 관한 에제키엘의 환시를
    네 복음사가에 적용시켜 이해한 데서 비롯한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역임하였고 거기서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축일은 4월 25일이며 9세기이래 지내오고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찬미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지내는 가운데

    오늘은 마르코 복음 사가의 축일을 맞이했습니다.
     


    4복음서에서 제일 먼저 우리에게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신 분이 마르코입니다.
     

     4복음서 중에 제일 먼저 쓰였고, 예수님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15.39)는

    고백을 이끌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십니다.
     


    아버지께서부터 나왔다가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시 전에

    남기는 말씀이 복음 선포를 하라는 것입니다.
     

    복음 선포라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속담에 “뭘 알아야 면장이라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의 일이든지 간에 그와 관련된 일을 하려면,

    그 분야에 관련된 학식이나 실력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런 모습이 아니라도 여러분들이 복음 선포를 할 수 있는데,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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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사람의 행태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요?
     


    성경 지식이나 전문적인 학습을 가지지 않아도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으로 이웃을 섬기고 살아가면서

    여러분 안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요구하는 사회적 기준의 치열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식민지 시대에 소위 신앙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거짓된 모습을 보고,

    “나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가르치셨지

     폭력을 가르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사랑의 참된 의미도 모르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자신 보다 못한 존재로 대하고, 도와준 것처럼

     공치사하며 자신을 포장하는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신앙인들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하고 자신을 낮추는

     삶의 모습을 본받아야 참된 복음 선포자가 되는 것입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으며 이웃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재물과 재능을 나누는 삶도 복음 선포의 의미입니다.
     

     흔히 신앙인들이 잘못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복음 선포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당에서 보면 복음 선포를 위해서 준비하고 공들여하는

    부대비용들에 대해서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용이 들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그리스도인 다운

     내용을 담고 있어야 참된 복음 선포가 됩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마치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비난한

    예수님의 목소리를 우리들도 똑같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복음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말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적인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정작 전해야 할 내용이 훼손되기 쉽습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본인의 생각을 전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율법에 다른 해석을 붙여

     백성들을 가르치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과 같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낡고 잘못된 모습을 당신의 사랑으로 완성시키고,

     율법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신 분이십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을 받은 우리들은 내 주위 이웃이 혹시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면

     참된 복음의 선포자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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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나의 참된 이웃이 되어준 사람’이 되어주었는지요?
     

     세상이 여러분의 사랑 기부나 모범적인 모습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고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적인 진실한 삶을 자랑하듯이 사는 것은

     세상에서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정보가 빠릅니다.
     

    누가 선행을 하고 기부하는 모습이 드러남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에 그것이 바로 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이 주는 상을 기억하시지만 교만하거나

    자신을 과대포장하거나 우쭐거리는 모습을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오로지 겸손하게 살아가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구나

    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을 기억하십니다.
     


    이처럼 복음 선포라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뜻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도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어 오신 분입니다.
     

    이제 예수님과 3년이라는 시간을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에게서 보여진 아버지의 뜻을 이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선한 뜻을 이루는 성사입니다.

     제자들은 충분히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보는 하느님의 무수한 은총과 권능을 보았습니다.
     

    특히 부활 사건을 통해서 믿음이 확고해지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복음 선포를 할 수 있고 해야된다는 것을 각인시킵니다.
     

    이런 믿음은 세상 어디에 가서도

    두려움이 없이 선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하고 파견되지만

    실제로 복음을 전하기에는 너무도 바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들도 매일 매일의 생활이 예수님이 말씀을 들음으로써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데,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는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우리들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선포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10,14)

    하며 우리들이 먼저 복음화되어야 함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들음으로써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는 말이

    자신 처지가 될 수 있도록 복음 선포의 사명을 충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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