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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께 바치는 자비의 기도에 관하여

 

  •                                               
  • 찬미예수님!
    
    
    				

    오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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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4일 부활 제 2주간 금요일 강론

    방어진성당 주임 신부 김두유 세례자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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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pper at Emmaus-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48.Oil on canvas, 42 x 60 cm.Musee du Louvre, Paris

     

     

    찬미 예수님!
     

    어제까지만 해도 니코데모와의 대화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오늘 그 분위기 확 바뀌어서

    요한 복음 6장의 서두를 묵상하게 됩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다’는 제목이 붙어 있는 내용인데,

     4복음서에 다 나옵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생명의 빵”에 대한 말을 하기 위한

    전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은 공관 복음서와는 달리

    성체성사를 직접 제장하신 내용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공관 복음에서 나타나는 최후의 만찬 상에서

     제정하신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여기 6장에 그 의미를 알려주려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 저자는 왜 최후의 만찬 기사를 빼고

    성체성사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학자들이 말하기를 요한 복음은 4복음서 중에서

    가장 후대에 쓰인,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

     약 100년에서 110년 사이에 쓰였다고 말합니다.
     

     이미 공관 복음에서 말씀하신 ‘이 예식을 행하여라.’는

    주님의 말씀을 초대교회에서는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11장17절 이하의

     가장 오래된 것을 알려진 최후의 만찬 기록입니다.
     

    요한이 복음을 쓴 당시에

    신자들은 이미 성체 성사를 거행하고 있었으므로,

    만찬에 대한 해석을, 그래서 요한 저자는 주님께서 세우신 성체성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알려주려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 복음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묵상하기란 어려운 복음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헤아리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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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묵상해봅시다.
     

    요한 복음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특정한 장소와 일시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로 활동 무대가 티베리아스 호숫가이고,

     이 호수가 상징하는 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장소가

    바로 호숫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곳은

     상징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군중이라고 한다면 바로 우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군중이라고 한다면 어떤 어느 사람이든지

    총망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라고 해도 됩니다.
     

    그 중에서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모습으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시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많은 군중 속에 나’를 대입시켜 주님께서 ‘나에게’

    어떤 분으로 다가오시는지를 묵상한다면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느님의 권능을 가지시고

    참된 음식과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사랑의 주님이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도저히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을

    예수님은 가능한 것으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군중은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기보다는 하나의 호기심 내지는

    단순히 병으로부터의 인간적인 고통에서의 해방을

    주님으로부터 받고자 하는 생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군중을 예수님은 믿음에로 이끄시려고 하십니다.
     

     인간적인 안목에서 믿음의 안목으로 우리를 탈바꿈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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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셨습니다.

    요한 저자는 산이라는 장소도 상징적인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 장소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우리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는가?
     

     굶주린 사람들을 모른 체 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이 산은 후대에 제자들과 함께 보여지는 천상 예루살렘의 산인

     하느님 나라의 풍성함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고

    당신 안에서 흘러 넘치는 모자람이 없는

    풍성함을 우리들에게 주실 것이며,

     제자들은 그 풍성함을 많은 군중들에게 선포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 저자는 이제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일을 알려주기 위해서

    어느 특정한 날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파스카 축제”와 관련짓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복음에 등장시킵니다.
     

    첫 번째 파스가 축제(2장), 두 번째 파스카 축제(6장),

    그리고 세 번째 파스카 축제(13장~17장)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 번째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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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알다시피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파스카 축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파스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신약의 파스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습니다.
 

죄없는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갈 수 있었듯이,

주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마

우리도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생명의 빵이 되신 분입니다.
 

 그래서 많은 군중에게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통하여

 모든 주권은 주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고 하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오 천명쯤 되는 사람을 먹이십니다.
 


우리는 필립보와 같은 생각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지배적입니다.

 작고 적은 것으로는 도무지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은 비록 하잖을지라도

당신께서 함께하시면 언제나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집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풍성함을 오늘날을 사는 지금 여기에서

 미리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처럼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작은 나눔과 사랑이 우리 모두를 살 수 있게 합니다.
 

필립보아 같이 계산적인 사고 방식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결코 기적이 일어나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성체 성사 제정문이 들어있지 않지만,

공관복음에 나오는 양식과 같습니다.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나누어 주셨다.”
 


예수님 당신이 하느님이시지만,

언제나 아버지 하느님을 항상 윗자리에 두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아야 합니다.
 

 언제나 우쭐거리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시도록 하여 우리 안에서 기적이 일어나도록 해야합니다.
 


주님께서는 빵을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성사의 풍부함을 보여주시고,

모두가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살도록 베푸시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유다인들의 기억 속에는 엘리사 예언자가

 빵을 많게 하여 백 명을 먹인 기적과 같은 모습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느님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도 매 미사 때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당신 몸을 받아 모시는데 있어서

 단순한 기적의 행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받아들여야 참된 생명이 됩니다.
 


인간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몸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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