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구부러진 줄로 직선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독서의 구약의 요셉의 이야기에 들어맞는 말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갔지만,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저지른 악행이 어떻게 그의 형제들과 가족들을
기근으로부터 구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섭리하셨는가를
요셉은 조금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이집트에서 재상이 되어 기근이 덮친 동안에
어떻게 사람들을 구했는지 그 이야기를 압니다.
비슷한 경우를 오늘 복음의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포도원 소작인들에 의해 살해당한 아들은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소작인들은 자신들의 악한 행동을 통해서 아들의 상속을 받기를 원했고
아들을 죽임으로써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의 죽음,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전 세계에 천상적 상속의 은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류에게 최상의 선을 가져다주시기 위해
사람들의 악의를 이용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분의 계획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해 궁금해 하기도 한다.
세상의 재앙, 전쟁, 불의와 부조리 등과
우리 개인의 삶 안에서의 아픔과 고통, 시련들이 다가올 때
우리는 그 순간에 요셉처럼 왜 우리는 그와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왜 그러한 악을 참고 계시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나중에 가서야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그것들을 이용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일상사에 대한 섭리를 포기하시거나
악의 세력이 너무 강해서
하느님조차 거기에서 선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의심에 빠지지는 맙시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고
늘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우리의 일상사 안에서도 하느님은 슬픔과 고통,
심지어 사람들이 재앙이라 일컫는 것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선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읍시다.
믿음의 눈이 열려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가 바치는 노래는
얼마나 가슴이 벅찬 감동과 감사의 노래가 되겠습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