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명의 세상을 위해서 목숨 바친 성 가롤로와 그 동료 순교자
중앙아프리카 우간다의 선교는
성공회 선교사들의 파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듬해 1879년에 중앙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백인 사제 선교단’이 조성되어
본격적인 선교 사업이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우간다의 무테사 추장은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이었고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리는 일에 협조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어 추장이 된 무왕가 추장은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동성애를 절대적으로 금한다는 사실에 격분하여
박해자로 돌아섭니다.
무왕가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많은 몸종을 거느렸던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그 중에는 13살에 불과했던 소년 성 키지토도 있었습니다.
무왕가는 특히 가롤로 르왕가를 갖은 감언이설로 설득했지만
끝내 굴하지 않자 참수형에 처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왕의 요구를 거부하는 몸종들까지 닥치는 대로
화형과 교수형으로 처단하는 만행을 자행합니다.
1964년 바티칸 제2차 공의회, 교부들 앞에서
가롤로와 함께 총 22명을 시성했던
바오로 6세 교황님의 강론이 매우 인상적인데요.
“순교자들의 영광은 재생의 표지입니다.
새 시대의 첫 열매인 이 아프리카의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아프리카 대륙은 자유를 얻어
독립된 아프리카로 일어서고 있습니다.”라며
그들의 믿음을 칭송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의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삶으로 현대세계에 “더 나은 정신적 표현과
더 나은 사회형태를 향해 열려 있는
새로운 문명에로의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온 몸으로 증거했던 교회의 보배임을 선포했습니다.
아름다움과 쾌락이라는 너울을 쓰고, 끊임없이 유혹하며
세상을 거짓과 추함으로 물들이려는 악이 난무하는 시대이기에
더욱 진리에 입각하여 목숨을 바친
가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희생이 숭고합니다.
진리를 향하여 곧고 반듯했던 그들의 전구로
어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기를 간곡히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