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17호 2017.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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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경완 신부 |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니 그냥 믿으라고 합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 아래서만 신앙이 가능한 것인가요?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mederico@cup.ac.kr
신앙은 이미 그 단어 자체가 말하고 있듯이 아는 것보다 우선적으로‘믿는 것’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믿는다는 것’을‘아는 것’의 반대말이라고 알아듣습니다. 알면 굳이 믿을 필요가 없다 여깁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얼마나 정확히, 제대로 알고 있는지 반문할 때가 있습니다. 진짜로 아는지, 그 앎이 참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앎은 의심 속에서 자라고, 의심을 먹으며 커갑니다. 그런데 이 속에서 진짜로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잘 모릅니다. 내가 왜 이런 색깔을 좋아하고, 하필이면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지 나 자신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게 우리의 앎입니다. 이렇듯 앎은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 밖에는 앎이 아닌 다른 것,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이렇듯 앎의 반대편이 아니라, 앎‘밖에’, 앎 저‘너머’에 위치합니다. 내 삶이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인정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신앙의 문이 열린다 할 겁니다. 신앙인은 구원신비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늘 애써야 하지만, 참된 진리는 앎에 있지 않고, 앎 저‘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