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에서 알몸 강복을

가톨릭부산 2015.11.06 05:17 조회 수 : 70

호수 2330호 2015.05.31 
글쓴이 김기영 신부 

루르드에서 알몸 강복을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성모님의 달을 마무리하면서, 지난번 루르드 순례를 갔을 때 추억 한 가지를 떠올려 보았다. 루르드에 가면 꼭 하나 빼먹을 수 없는 코스가 있는데, 바로 목욕이다. 1858년, 성모님께서 벨라뎃다에게 발현하시고, 이곳의 흙을 파고, 그 물로 씻고 마시라고 하셨다. 지금도 엄마들이 공중목욕탕에서 아이들 살이 빨갛게 되도록 때수건으로 빡빡 씻기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모님도 당신 자녀들을 죄와 상처로부터 깨끗하게 씻겨 주고 싶으셨나보다. 아무튼, 발현 동굴에서 미사를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목욕소에 가보니 많은 순례객들이 묵주기도를 하면서 긴 줄을 서 있었다. 대충 봐도 2시간은 족히 걸릴 듯했다. 그 때, 현지 봉사자 한 분이 와서“신부님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이리로 오세요.”그런다. 같이 간 일본 신부님은“저는 안 갈랍니다.”하길래 왜 그러냐니깐 신부들이 가면 우선적으로 앞줄에 세워주는데, 자기가 가면 또 한 명이 밀려서 그만큼 더 기다려야 하니깐 그게 싫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목자의 마음인가? 역시 일본 신부님이야~ 감탄을 하면서도 나는 안에 뭐가 있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칸칸이 5개의 목욕소가 있고, 각 방에 6명, 총 30명의 봉사자들이 종일 순례객들의 목욕 봉사를 돕고 있었다. 알몸에 흰 천 하나 달랑 두르고 시원한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니 마치 새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때, 갑자기 봉사자 중 한 분이 또“신부님이세요?”그런다.“네.”하니, 자신들을 강복해 주십사고 한다. 당황스러웠다. 정신을 추스르고 있는 동안 그 봉사자 형제님은 다른 방의 목욕 봉사자들을 모두 불러모으는 것이 아닌가? 아! 그때 깨달았다.‘이게 루르드의 법이구나. 성모님의 법이구나’신부를 빨리 들어가게 하는 것은 신부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수백 명을 목욕시키는 그들에게 새로운 마음과 생기를 북돋아 주라고, 그래서 오는 순례객들을 더욱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라고 성모님께서 신부를 쓰시는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에 기쁨과 전율이 일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만 가늠할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이 일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경제적인지, 민주적인지 등등 말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들에게 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그것을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느님께서는 늘 사랑이시고, 더 큰 사랑을 위해 우리들을 작은 생각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더 큰 사랑의 바다로 부르고 계신다. 5월을 마치면서 성모 어머니와 함께 순명의 마음으로 그 행복한 사랑의 항해를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

호수 제목 글쓴이
2214호 2013.05.05  고속도로에서 부활 강의를 듣다 김기영 신부 
2218호 2013.06.02  푸른 빛 안고 순례하시는 어머니 김기영 신부 
2222호 2013.06.30  그 밤, 주님의 집으로 초대받은 이 김기영 신부 
2226호 2013.07.28  구원의 초대는 소리 없이 김기영 신부 
2234호 2013.09.15  천사를 데려오셨네요 김기영 신부 
2243호 2013.11.10  성모님의 눈빛으로 김기영 신부 
2251호 2013.12.29  성탄 구유 속에 끼이고 싶다면 김기영 신부 
2261호 2014.02.23  때로는 요셉처럼, 때로는 마리아처럼 김기영 신부 
2269호 2014.04.20  사랑 앞에 더 이상의 악이 없음을 김기영 신부 
2277호 2014.06.15  앗쑴! 히로시마 김기영 신부 
2284호 2014.08.03  인생의 안전포구로 찾아오길 김기영 신부 
2294호 2014.10.05  소년이여, 날개를 펴라! 김기영 신부 
2299호 2014.11.09  탓짱 가족에게 길 내신 주님 김기영 신부 
2304호 2014.12.14  성당 문 열어놓기 김기영 신부 
2310호 2015.01.11  두 모녀를 통해 드러난 빛의 신비 김기영 신부 
2315호 2015.02.15  내 코가 석 자인데 김기영 신부 
2320호 2015.03.22  그대, 오늘 주님의 방문을 받았는가? 김기영 신부 
2325호 2015.04.26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훨훨 김기영 신부 
2330호 2015.05.31  루르드에서 알몸 강복을 김기영 신부 
2335호 2015.07.05  하느님 얼굴의 오른편과 왼편 김기영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