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
변미정 모니카 / 가톨릭노동상담소 사무차장 free6403@hanmail.net
“몇 학번이세요?”“저 대학 안 나왔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공장 들어갔거든요.” 순간 얼굴이 화끈해지며 뭐라 말해야할지 몰라 당황하는 나에게,“그런 질문 자주 받아 이제는 괜찮아요. 대학 안 나온 게 죄도 아니고, 동생들 학교 뒷바라지해서 이제들 자리 잡고 살아가는 거 보니 뿌듯한 마음이예요.” 본인에게는 아픈 상처일 수도 있는 부분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며 답한 그녀의 솔직하고 밝은 얼굴에서 깨우침을 얻는다.
그녀처럼 어린 나이에 공장으로 들어가야 했던 산업화 세대의 삶은 평안할까?
“일요일에는 고구마나 삶은 계란 하나로 점심을 먹었어요. 100명이 일하는데 식비가 9만원으로 1인당 450원을 가지고 식사를 꾸렸어요. 샤워실은 회사가 쓰다 버린 술 탱크에 지하수를 받은 물로 샤워를 했고 야간에 일할 때 눈 붙일 수 있는 휴게실에는 곰팡이뿐만 아니라 쥐와 바퀴벌레가 득실거렸어요. 한 달에 한 번 겨우 쉴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휴일에 일해도 휴일근무수당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연차수당이나 추가 근무수당도 마찬가지였지요.”
60∼70년대 열악한 노동현장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에서 잘 나가는 모 사업장 노동자들 이야기다. 지난 4월 29일은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며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며 파업을 벌인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한민국 산업화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50∼60대로‘촉탁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대부분이다. 이제 노년의 삶을 소박하게 준비해야 할 그들에게 비 오면 비닐 한 장으로 버텨야 하는 길거리 농성 파업현장은 생경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한 달에 이익금 2,000만 원씩 챙겨가는 사장의“개한테는 주지 않는다.”라는 모욕적인 말과 수억 소리가 나는 손배소 청구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현시대에 맞게 고쳐 말하면‘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비일비재 행해지고 일어나고 있는 경제적 살인을, 단지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5월 1일 노동절이 지나고 오늘은 생명 주일이다.
생명의 존엄이 결여된 노동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노동이 될 수 없다. 꼬박 365일이 넘게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고 외치다가, 시청 앞 전광판 꼭대기까지 내몰리고 있는 저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생명과 노동을 말할 수 있을까?
* 촉탁 계약직 : 정년이 지난 사람을 대상으로 1년 단위로 계약하는 단기 계약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