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낯선 이야기
김종대 가롤로 / 시인, gaserol@hanmail.net
“목장이 있습니다. 넓은 초원, 많은 양이 있습니다. 목자 혼자 돌보기 어려워 목동과 삯꾼을 씁니다. 돌볼 양을 구역으로 나누어 둡니다. 키우다 보니 어미 양이 새끼들을 낳습니다. 그러면 양의 수가 늘어야 하는데 수는 변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이리떼가 물어 가거나, 목동이나 삯꾼들이 잡아먹기도 하고, 방치하여 길을 잃는 양들도 있었습니다. 이젠 양들끼리 서로 지키고 챙겨 보지만 힘이 부족합니다.”
세상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사명 앞에서‘낯선 이야기’를 합니다. 전교도 중요하지만 냉담을 줄이는 게 더 필요합니다. 새 신자가 생기지만 수계신자 비율은 변화가 없습니다. 예비신자들이 초대되어 교리를 받을 땐 높은 관심과 배려를 받지만 정작 세례를 받고 새 신자가 되면 얼떨떨하고 익숙하지 않은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자기 신앙의 빛깔이 짙음과 옅음. 진함과 묽음이 불분명한 농담(濃淡) 상태. 이때 신자들이 보여주는 농담(弄談)같은 태도나 지나친 진담(眞談)에 상처를 받다가 어느 순간 냉정(冷靜)한 신자를 발견합니다. 대부분 예비신자 때보다 신경 쓰지 않고, 대부모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쯤 되면 스스로 냉정(冷靜)하게 따져 봅니다. 그리고는 흥미를 잃고 냉담(冷淡)으로 나아가며 신자들의 무관심과 쌀쌀한 반응에 냉장(冷藏)이 됩니다. 사실 부패 방지를 위해 저장하는 것 같지만 조금씩 냉동(冷凍)되어 버립니다. 딱딱하게 얼어 굳어진 생각과 상처와 실망으로 말입니다. 그러다 얼었던 것이 녹아 해동(解凍)되어도 처음과는 다릅니다. 행동(行動)이나 활동(活動)이 무기력해지기 일쑤입니다.
이럴 때 목자의 목소리를 잘 알아듣고 싶어 합니다.(요한 10, 1~10 참조) 선택과 집중, 노력과 열정의 사목(司牧)을 원합니다. 단계별로 보면 예비신자에게 알고 믿을 교리와 실천 신앙을 교육(敎育)합니다. 잘 성장하도록 정성 들여 양육(養育)합니다. 그렇게 어버이를 섬기고 자식을 기르듯 사육(事育)하고 나면 사목적 배려로 복음의 기쁨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짐승을 먹여 기르듯 사육(飼育)하거나 가축을 놓아 기르듯 방목(放牧)하고, 돌보거나 간섭하지 않는 방임(放任), 더 나아가 방치(放置)하는 경우를 봅니다.
사육과 방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목자도 양도 길을 잃지 않는, 목장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서로 돌보고 챙기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예수님 닮은 사목을 원합니다. 알아서 하겠거니 두면 결과는 반대입니다. 결국 목장은 목자와 목동, 삯꾼의 역할과 움직임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