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구유 속에 끼이고 싶다면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gentium92@yahoo.co.kr
올해, 프랑스 순례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날은 주일이었는데, 미사를 몽 생 미셸(Mont Saint-Michel)에서 참례하기로 되어 있었다. 세계 유산으로도 유명한 몽 생 미셸은 708년 아브랑슈의 주교 오베르가 꿈에 3번의 미카엘 대천사의 계시를 받고 지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966년부터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사용되었고, 중세 때는 가톨릭 성지로 많은 순례객이 다녀간 곳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때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던 아픔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1865년, 다시 수도원으로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무튼, 이렇게 유서 깊은 곳을 방문한다니 버스 안에서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파리에서 5시간도 넘게 달려 도착했을 때 미사가 거의 시작될 시간이었다. 20명 남짓한 순례단을 재촉해서 어서 성전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오사카에서 온 할머니 한 분이 순례 내내 휠체어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가보신 분은 꼭대기까지 돌계단 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잘 아실 것이다. 이 할머니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것을 알고, 출발 때부터 이미 체념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괜찮으니 어서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그리고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이지 그럴 수는 없었다. 만약 다른 볼거리라면 포기하겠지만, ‘미사’였다. 업었다. 할머니를 업고 가파른 돌계단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싫지는 않았는지 잠자코 있었다. 삼분의 일쯤 올라갔을까?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숨은 턱밑에까지 찼다. 헉헉… 하늘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고, 까딱하면 뒤로 넘어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뒤에서 휠체어를 들고 쫓아오던 콩고 신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둘이서 팔가마를 만들어 태우고 그 돌계단을 끝내 올라갔다.
미사 시간은 맞췄지만, 숨을 고르느라 아무것도 들리질 않았다. 머릿속이 하얀 채로 성변화로 접어들어 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물이 툭툭 쏟아졌다. 내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놀라움으로 휩싸였다. 마음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아! 예수님께서 보고 계셨구나.’ 더불어, 복음서에서 네 명의 동료가 지붕을 헐어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로 내려보낸 구절(마르 2, 4 참조)이 스쳐 지나갔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할머니 역시 영성체 때 자신의 발로 걸어서 성체를 모시러 나간 것이었다.
예쁘게 꾸며진 성탄 구유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경배하러 온 목동들과 동방박사들 틈에 살포시 끼이고 싶어진다. 어떻게 하면 낄 수 있을까? 복음을 믿고, 실천을 하고 미사에 참례할 때, 이렇듯 아기 예수님께서 나도 끼워주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