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
박주영 첼레스티노 / 조선일보 부산 취재 본부장 park21@chosun.com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이지요. 그래서 각 레지오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인근 묘지를 찾아 위령기도를 합니다. 이 행사를 할 때면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부자와 거지 라자로’ 얘기(루카 15, 19~31)입니다. 지상의 산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빌어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되지요.
11월은 교회력으로 연말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이지요. 교회에선 위령성월, 연중 34주간을 넘기면 새해인 대림 시기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신 분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또 한 해를 떠나보냅니다. 예전 같으면 ‘위령성월’이란 단어만 읽지만, 중년을 지나고 있는 요즘은 단어 안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늦가을과 초겨울이 겹치는 이맘때가 되면 제 마음은 휑해집니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사람들의 마음도 분주한데 말입니다. 교회는 세상보다 한발 앞서 시간을 사는지도 모릅니다.
“아, 벌써 한 해가 다 갔구나”라고 감회에 젖습니다. 그리곤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봅니다. 새해가 시작될 때 무슨 결심을 했는지, 어떤 목표를 세웠는지, 그 결심은 지켰는지? 목표는 달성했는지를 살펴봅니다. “올해 이룬 건 뭔가?” “한 게 뭐 있나?”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거지요.
금연 결심과 목표를 지키지 못해 아내에게 여전히 지청을 듣고 있고, 다른 것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습니다. “아, 올해도~”라며 가슴을 칩니다. 부끄럽기도 하구요. 특히, 후회되는 건 ‘기도’와 친해지지 못한 겁니다. 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로 이사오면서 “성체조배실에 자주 가서 주님을 뵈리라”고 좋아했는데 전혀 ‘꽝’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도 안에 생명, 안식, 기쁨이 있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실천을 못 하고 만 것입니다. 올 한 해 제 생활은 생명도, 안식도, 기쁨도 적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석양에 바쁜 농부처럼 올해 남은 시간만이라도 ‘기도’에 노력해보려 합니다. 오는 새해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힘을 얻을 수 있길 바라며, 입으로라도 읊조려 봅니다. “하느님, 저를 도와주소서. 주님 어서 오시어 저를 도와주소서.”
정 신자의 글을 실을려면 차라리 언론사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싣던지요?
홍보국 담당 신부님께 드리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