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14호 2013.05.05 
글쓴이 김기영 신부 

고속도로에서 부활 강의를 듣다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gentium92@yahoo.co.kr

내가 활동하고 있는 오카야마, 돗토리 지구는 참 넓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성당으로 지구 사제회의를 갈 때는 4시간이나 차로 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회의 날짜가 모두 월요일이기 때문에 주일을 보낸다고 쌓였던 피로를 고스란히 새벽 미사의 봉헌물로 바쳐드리고 성당 문을 나선다. 분명 다 바쳐드렸는데, 핸들을 잡기만 하면 왜 이리 졸음이 몰려오는 것일까?

아무튼, 그날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았다. 미사 후, 잠시 쉰다고 의자에 앉는다는 것이 그만 다른 신부님들과 출발하기로 한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출근 시간이라 도로는 꽉꽉 막히고, 죄송한 마음에 먼저 출발하시라는 전화를 넣었다. 회의 전, 방문하는 성당 자매님들이 정성껏 점심을 준비해 주시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시간에 맞춰 보려고 이번에는 고속도로를 타기로 했다.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보기 위해서 차동엽 신부님의 신나는 강의도 듣고, 묵주기도도 하면서 씽씽 달렸다. 

그런데 너무 달렸나? 컴컴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는데 후방 거울을 보니 빨간 사이렌을 울리면서 누군가 나를 쫓아왔다. ‘어라! 지나오면서 경찰차를 못 봤는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생각하는 사이 경찰차 한 대가 내 옆으로 찰싹 붙어서 정지 신호를 보냈다. 

인생에서 피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고속도로에서 경찰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에누리없는 벌금과 감점의 후폭풍은 그날 하루, 운전자의 하루를 다운시키기에 충분하다. 나도 그럴 뻔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기도 중이었고 그 와중에 일어난 일은 분명 은총이었다. 설령 그것이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더라도 분명 그것은 주님의 은총 속에 일어난 것이다. 보통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망쳐버리기 쉽지만, 오히려 “좀 천천히 가거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니, 근무 중인 경찰들을 통해 더욱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주님의 보호 하심에 감사의 마음이 솟아난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이 그날 하루를 보다 주님과 가깝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주님은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이고 생명이 넘치는 것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다. 참으로 부활을 믿는 이의 마음 역시 그러해야 함을 깨닫는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부정적인 사건을 긍정적인 의미로 녹여내는 마음의 힘이 곧 부활을 사는 이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환해진다. 그래서 그날의 벌금은 부활강의의 수업비로 기쁘게 납부했고, 또 벌점은 이 강의를 성실히 수료했다는 A+점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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