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복음묵상
성금요일은 전례적으로 주님의 수난이 십자가 죽음으로 절정을 이루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따금 예고하신 예루살렘에서의 비극적인 죽음을 오늘 맞이하십니다. 왜 그런 죽음을 맞이하셔야 했을까요? 고뇌와 고통으로 얼룩진 수난, 폭력적인 죽음은 인간적인 삶의 부정적인 현실을 드러내기에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예수님께서도 이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수난, 죽음의 가치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탁월한 목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 진리는 바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아들을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문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쓰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육체적 수난을 겪으시고, 유다의 배신과 종의 몸값으로 팔리심, 베드로의 부인과 제자들의 도망, 군중의 은혜를 저버린 행동과 종교 지도자들의 증오 같은 도덕적 수난도 겪으셨습니다. 
겟세마니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번민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효과적인 서막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계획을 받아들이십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이것이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이유와 근거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시려고, 곧 당신 형제들과 연대하시려고 수난의 십자가를 손수 짊어지십니다. 신경에서 고백하듯이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는 우리 신앙이 강생부터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예수님의 온 생애를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밝혀 주는 신학적 근거입니다. 십자가의 비밀은 사랑에 있습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