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갈릴래아
김기영 신부(안드레아)
지난 6월 8(금)~10(일) 일본 가톨릭 교회에서는 ‘일본 26위 성인 시성 15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당시, 진리를 거부했던 풍신수길(豊臣秀吉)의 모진 박해로 교토에서 나가사키에 이르기까지 800km에 달하는 십자가의 길을 맨발로 걸어갔던 신앙의 선조들은 1597년 2월 5일 순교의 월계관을 받는다.
막부군의 서슬 퍼런 칼날과 창끝마저 불타는 사랑의 선혈로 녹이고, 천국을 향한 희망으로 박해하는 이들의 가슴마저 울렸던 위대한 신앙의 가치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한 그들의 신앙을 물려받은 우리는 무엇을 전해야만 하는지 새롭게 인식하고,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9일 아침, 드디어 성 디에고 키사이의 오른팔 유해가 오카야마 성당 제대 앞에 안치되었다. 성인은 오카야마현 하가(芳賀) 출신의 예수회 수사로서 26위 성인 중 최연장자였다. 순교 이후, 유해는 신자들의 보호 아래 외국으로 보내어졌다. 그러다가 1993년 스페인 신학교로부터 귀국, 일본 26위 성인기념관에 안치되었다가 이번에 한시적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415년 만의 귀향이었다.
기념미사는 그야말로 성대했다. 교황대사와 주교단, 사제단, 신자들이 모두 모여서 성인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했다. 미사 참례 중 내내 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이렇게 가슴 시리도록 찬미할 수 있다는 기쁨, 이것이야말로 신앙이 내린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영성체 후, 주교님은 이날의 감동을 이렇게 나누어주셨다. “여기 성인께서 십자성호를 그으셨던 오른팔 유해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긋는 십자성호가 과연 무슨 의미인지 무엇보다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다시 한 번 나를 울렸고, 지금껏 타성에 젖어있던 내 기도를 깊은 회심으로 이끌어 주었다.
올해, 교황님께서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거룩함과 죄가 교차하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가 배인 우리 신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을 따라나선 뒤에도 수없이 자행된 죄와 반성, 그리고 용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잘못과 배반으로 얼룩진 내 믿음을 깨끗이 닦아주시는 하느님의 자비 앞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 옛날, 갈릴래아에서 고기 잡던 제자들을 불러주셨던 그 목소리로 나를 불러주시는 주님. 이제 성인들의 전구 아래, 다시금 용기를 내어 내 신앙이 시작되었고 돌아가야 할 곳, 내 인생의 갈릴래아를 찾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