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스틱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 수필가
어느덧 부활 주간의 가운데에 섰다. 온 나라가 흥성거리는 꽃 잔치로 북적대더니, 이제 신록의 싱그러움이 온 누리에 가득하다.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사순의 희생을 나누면서 주님의 고행과 부활하심을 묵상하고, 그분을 닮아 보려는 우리들의 눈물 어린 동참이 있었기에, 놀라운 기쁨의 부활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부활을 축복이나 하듯, 온천지에 생명이 용트림하며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고, 죽은 듯 움츠리고 있던 메마른 가지에서 부드럽고 싱그러운 연둣빛 잎을 틔우니, 이 화사한 봄을 맞는 놀라운 생명의 부활을, 잔인하리만큼 아름답다고 명명(命名)한 것이 아닐까?
지난 토요일, 아내와 힘겹게 앞산 매암 바위에 올랐다가, 백 미터 가까운 험준한 절벽 옆으로 난 가파른 내리막길을 택해 내려왔다. 두 개의 스틱에 떨리는 다리를 의지하면서 조심스레 내려오다가 문득 천국을 향하는 인생의 행로를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두 천사가 나타나,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하신 말씀을 상기하며, 천국이 저 절벽 아래 평탄한 길이며 평화스러운 마을이며 내 가정일 것이라는 것과 이 가파른 내리막길은 우리의 인생길, 하나의 스틱은 내 가정을, 다른 하나는 영혼을 지탱해 주는 신앙의 스틱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힘들어 가파른 길을 한번 구르면 저 아래에 쉽게 닿을 것 같지만, 이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정을 지키고 신앙에 의지하는 이 두 개의 스틱으로, 평탄한 길까지 절뚝거리더라도 조심스럽게 인내하며 내려가는 길이 우리 삶의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길에 가정과 신앙의 스틱을 조여 주고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의 대리자이신 신부님이 너무나 크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세속의 영달을 버리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신 예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신부님과 수녀님의 삶은 바로 현실에서 보는 예수님의 참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을 함께 수행해 가는 우리는, 모름지기 이분들의 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이해하고 존경하며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보살피고 도와드려야 할 것이다.
어린 복사들이 신부님을 도와 미사에 봉사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참으로 귀엽고 대견스럽다. 곁에서 돌봐 주는 젊은 부모님의 정성도 참 아름답고 흐뭇하다. 이 일꾼들이 자라서 또 우리의 천국을 향하는 길에 두 개의 스틱을 조여 주는 하느님의 일꾼이 될 것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