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속에 깎아 넣은 신앙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성당 인근 산업 폐기장에서 에도(江戶)시대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도교 유물 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른바 “기리스탄 또는 오리베(織部)등롱(燈籠)”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흔히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석등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발견된 것은 그 하단부였다. 처음 이 등롱을 만든 사람은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 1544∼1615)로, 그는 전국시대의 무장이자 가톨릭 신자였던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 1552∼1615, 현재 오사카교구에서 시복 추진 중)의 벗으로서, 일본에서는 다도(茶道)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당시 오리베는 우콘과 차를 나누면서 많은 신앙의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석등 안에 새겨 남기고자 했다. 가령, 석등 다리 부분의 기둥에 양쪽 귀를 짧게 깎아서 십자가의 가로 형태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과 마리아 관음상과 같이 성모자상이나 제의를 입은 사제의 모습으로 데우스(Deus, 하느님)상을 새겨 넣은 것을 보면 그가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후, 금교령으로 인한 신앙의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고, 기리스탄 등롱은 가톨릭 신앙을 불상(佛像) 안에 숨기고자 하면서도 드러내려고 하는 기묘한 형태로 변화, 제작되었다. 특히 “카쿠레 기리스탄(숨은 그리스도인이란 뜻)”들에 의해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격려하는 성물로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전국에서 발견된 기리스탄 등롱은 약 180점 가량 된다고 한다.
사실 이것이 발견되고 많이 바빠졌다. 우선은 가능한 한 이 유물의 정확한 근거를 찾기 위해서 자료를 찾고, 각지의 권위자들에게 사진을 보내서 진위를 문의해야 했다. 또 등롱을 원만하게 성당으로 인도하기 위해 발견된 땅의 주인과도 교섭을 해야 했다. 마침내 본당 교우들의 큰 도움 덕분에 신앙의 유산을 본당으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다.
교구에 보고하니, 주교님도 특별한 관심을 두고 본당을 방문하여, 꼼꼼히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가셨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이 등롱을 모실 적합한 장소로서 일본 26위 성인 중 한 분이고 오카야마 출생인 성 디에고 키사이의 고향인 하가(芳賀)순례지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로써 더 많은 이들이 순례지를 방문해 기도하고, 그 은총으로 그들의 신앙이 깊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 않겠는가.
400년이 넘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 모진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단단한 바위 속에 깎아 넣었던 그들의 신앙이 오늘날에도 후손들을 통해 다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올해, ‘신앙의 해’를 지내면서 이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비추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