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복음묵상
고대 중동에서는 임금들이 서로 계약을 맺을 때 희생 제물을 가져와 반으로 자른 뒤 계약 조건을 말하며 잘라진 제물 사이로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둘 가운데 누구라도 계약을 어기면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맹세했다고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는 장면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자른 짐승 사이를 지나가시며,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특이점이 발견됩니다. 계약 당사자인 아브라함은 잘라진 짐승들 사이를 지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잘린 짐승 사이를 지나가시면서 계약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보니 창세기 15장은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라기보다 하느님의 일방적인 약속, 곧 하느님의 언약에 관한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와 계약을 맺으시는 것도 아브라함이 청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 편에서 선택하시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계약에 당신 스스로를 옭아매시는 하느님. 여기서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마지막까지 책임지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오늘 제2독서는 이런 하느님의 모습이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주님께서 변모하시면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실 때, 바로 당신의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하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당신이 바로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제물이며, 당신의 피로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지리라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 그분의 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이루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충실하심 덕분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