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문이 열리는 소리
김기영(안드레아) 신부
지난 달, 6년간 봉성체를 다녔던 베드로 할아버지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젊었을 때 사진을 보면 꽤나 멋쟁이였던 분인데, 1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전신마비가 와서 그야말로 침대에 누운 채 그 기나긴 세월을 견뎌왔다. 말을 할 수조차 없었지만, 의식은 살아있었기 때문에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첫 날,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베드로 형제님! 형제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잘 산다는 것은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그것이 봉헌의 삶이고, 신앙인의 삶입니다. 비록 지금 병석에 있지만, 이 고통의 의미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나와 같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최고의 삶이 됩니다.”
한 번은 왼손에 내출혈이 생겨서 두터운 환자용 장갑을 끼고 있었다. 신경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지만, 유난히 다른 사람들이 손을 만지는 것을 꺼려했다. 간호사들마저도 장갑을 갈아 끼우는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가만히 손을 잡으면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왼손을 건네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혹시라도 “예수님, 내 손 좀 꼭 잡아주세요.”란 뜻은 아니었을까?
“하느님께서 한 쪽 문을 닫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 한 쪽 문을 열어두신다”라고 했던가! 이런 베드로 형제님에게도 마음 든든한 부인이 있었다. 이 분 역시 지난 13년 간, 인고의 세월을 고스란히 신앙 하나에 의지하면서 남편의 병수발을 들어왔다. 토요일 아침미사 후, 남편을 위해, 자신을 위해 지극 정성으로 묵주알을 굴리는 자매님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본당신부로서 얼마나 가슴이 저미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자매님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모른 척 하실 리 없고, 반드시 기도의 응답을 주시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8월 한 달, 유난히 본당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특히, 3자매교구 행사로 열흘 동안 필리핀을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떠나기 딱 3일 전, 성모 승천 대축일을 가운데 두고, 하느님께서는 베드로 형제를 불러주셨다. 장례미사와 함께, 떠나는 이에게 필요한 모든 은총이 베풀어졌고, 살아남은 이에게는 긴 수고로움에 대한 휴식이 주어졌다. 화장터에서 마지막 배웅을 하면서, 분명 성모님께서 베드로 형제를 기쁘게 마중 해 주셨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천국 문이 열리는 소리는 그렇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