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캐럴의 계절이다. 거리마다 울리던 캐럴이 요즘은 잘 들리지 않지만 ‘고요한 밤’을 달리는 ‘루돌프’가 없는 크리스마스는 영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캐럴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산타의 썰매를 끌어주는 그 유명한 사슴 루돌프가 왕따였다는 것이다. 못 생기고 코까지 빨갛게 부풀어 오른 루돌프를 다른 사슴들은 모두 조롱했다. 그런데 산타는 멋진 사슴들을 제쳐두고 빨간 코가 좋다며 루돌프에게 썰매를 끌어 달라고 부탁한다. 루돌프는 반짝거리는 코 때문에 왕따였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온 세상에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됐다. 이 캐럴의 배경이 된 동화는 병으로 앓아누운 아내와 투정을 부리는 딸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로버트 메이’라는 사람이 썼다고 한다.
성탄이 가까워지면 성당은 분주해진다. 대림초가 하나씩 켜질 때 마다 대미사를 준비하는 성가대의 화음은 더욱 멋있어지고 성탄잔치에 나갈 학생들은 장기자랑이나 연극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청년회나 초등학생들과 씨름하는 주일학교 교사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대미사를 준비하는 복사단의 진지한 연습, 맡은 바 임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러 신심단체들의 노력으로 성탄은 준비되어 간다. 시간과 정성을 내어 놓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에 나 같은 불량신자도 성탄 미사의 한구석을 차지할 수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쉽지만은 않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면 파김치가 돼 집에 돌아오는 가장 들이 대부분이다. 대림기간 만이라도 웃으며 지내려 해도 일하다보면 얼굴 붉힐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연말이면 으레 있는 회식도 빠졌다가는 눈총 받기 십상이다. 주말도 없는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에 잠을 줄여 가며 공부한다. 가사에 보탬이 되겠다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앉지도 못 하고 서서 일하는 여성들도 많다. 주님이 첫 번째고 이를 위한 노력과 시간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걸 알지만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가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루돌프가 길이길이 기억된 건 뛰어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부족함을 알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살이에 지치고 내어 놓을 것이 부족해도 아기예수가 곧 오실 것임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 성탄을 준비하는 시작일 것 같다. 기다림은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믿고 바라는 것이다. 처지와 능력이야 서로 다르겠지만 곧 오실 주님께 드릴 기쁜 인사를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대림절이 됐으면 좋겠다. 루돌프가 빨간 코로 뜬 것처럼
부족한 내가 희망을 전하는 주님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음을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