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글이 쓰고 싶어질 때다. 한세상을 아프게 견뎌낸 자들의 삶엔 나무의 목리같이 아름다운 지문이 찍혀있다. 간절한 마음의 근원에는 잊히지 않는 그 눈물의 의미가 함께 한다. 이미 가을이 왔는데도 올 여름 소중한 땀의 기억과 함께 말없는 가슴으로 흘러내리던 그 남자의 수정 같은 눈물이 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에서 격리된 구호시설에서 시계 초침만을 바라보며 무인도 석상이 되어 연명하고 있는 기막힌 인생은 없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뒤 숲엔 매미소리가 한창이었다. 들끓는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와상(臥床)환자들의 목욕 준비를 서둘러야하는 요양원의 한낮은 등줄기 땀을 의식할 새도 없었다. 4층엔 스무 명의 어르신이 계신데 절반 정도가 누워서만 지내는 중증환자였다. 그 남자는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냥 정물이었다. 빡빡 민 머리통은 달처럼 둥근데 흰 피부와 유달리 큰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 삶의 이력에 대해 알 수는 없었지만 흐릿하게 먼 데를 응시하는 눈빛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날도 반찬을 잘게 다진 식반의 밥을 떠 먹이게 됐다. 침상을 조절해 앉히고, 턱받침을 대고, 팔을 고정시키는 일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나 삼킨 음식이 식도를 통과할 때까지의 완급을 조절하는 요령은 역시 인내를 필요로 했다. 음식이 절반쯤 줄어들었을 때였을까. 내 눈을 깊이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면서 경련이 일었다. 그리곤 입술을 실룩이며 섧디 섧은 표정으로 주루룩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한동안을 소리 없이 흐느꼈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이라고 했다.
말을 잃었다고 해서 감정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느끼고 전하고자하는 의지의 분출은 속에서 용암처럼 샘솟고 있었던 것이다. 영혼 저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온 내면의 언어, 그것은 눈물이었다. 언어는 때로 얼마나 무위한 것이던가. 수다와 허세와 과장된 위선의 포장은 진실의 알맹이를 사장시킨다. 할 말을 눈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 그의 언어는 살아있었다. 올 여름, 진심에서 흐르던 그의 눈물은 붓끝은 어눌하고 감정만 격한 내 글쓰기의 전형을 부끄럽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