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의 사랑

가톨릭부산 2015.11.02 11:45 조회 수 : 24

호수 2001호 2009.07.12 
글쓴이 정여송 스콜라스티카 

사람들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특히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 해결하기 어려운 일과 맞닥뜨렸을 때는 촌스럽고 유치한 노래에서조차 위로를 받는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극복해 낼 수 있는 힘까지 얻는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참아냈던 사람들의 쓸쓸한 곳을 건드리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까닭이다. 진솔하고도 상식적인 이해와 협력 메커니즘의 작용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이해와 협력은 좋은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 모른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만나는 모임이 있다. 소공동체 모임이다. 무엇이 이들을 모이게 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커피? 맛있는 과일? 아니다. 물론 의무감으로 오는 사람도 있고, 일주일 동안의 삶을 나누기 위해 모임 날을 기다리다가 오는 사람도 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돌아가면서 한주일 동안 살아온 소중한 이야기를 나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야기. 그냥 가만히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 이야기. 눈시울을 적시다가도 함박웃음을 짓는 이야기. 슬픔이 있고 아픔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행복이 있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화자가 열심히 문제점만을 얘기하다가도 나중에는 스스로 뉘우치며 해답까지 제시한다. 그 분이 같이하심이리라. 그래서인지 작은 이야기지만 언제나 즐거운 깨달음을 주는 해피엔딩스토리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사랑합니다!”는 말과 함께 머리위로 하트 모양을 그린다. 이야기를 마친 화자는 “행복합니다!”하고 두 손을 가슴에 얹는다.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버스나 지하철, 공공장소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왠지 낯익다든가 잘 생기지 않았어도 친근감이 가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얼굴이 있다.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건네며 선뜻 자리마저 양보하고 싶어진다. 손가락에 묵주반지를 끼고 있거나 손목에 묵주 팔찌를 차고 있어서가 아니다. 보이는 않는 그 분의 사랑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 분의 사랑은 우리를 선하게 만든다. 오늘도 온 정성으로 자비를 베풀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나 덮어주며 용서를 가르치고, 스스로를 굽혀 낮추면서 겸손함을 보여주신다. 사람들이 왠지 모를 환한 얼굴을 가지게 되는 것은, 주름투성이지만 평온한 얼굴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 분의 사랑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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