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08'을 펴냈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08년 12월 31일 현재 한국 천주교 신자는 5백만 4115명으로 한국천주교회가 시작된 이래 225년 만에 5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대비 비율로 보면 우리나라 총인구 5039만 4374명의 9.9%로 10명 중 1명이 신자인 셈인데, 토착신앙의 뿌리가 깊고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사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놀랄만한 점유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가톨릭 언론에서는 2008년을 복음화율 10%에 육박한 뜻 깊은 해라며 축하하고 널리 홍보했다.
과학·자본 지상제일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에 하느님과 사람을 제일가치로 내세우는 복음화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뜻 깊다 하겠다. 하지만 수치로 나타난 성장세를 들여다보면 마냥 축하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번에 나온 통계자료를 보면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여율은 평균 24%이고 판공성사 참여율은 30%인데, 이는 곧 전체 신자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른바 냉담신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화가 꾸준히 성장되고 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좀 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다시 말해서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이 기쁜 소식을 듣고 해방되는’(루카 18∼19) 그런 나라가 좀 더 실현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신자수가 늘어남에도 지금 사는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느낄 수 없다면 수치가 보여주는 복음화 성장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아마 복음화란 그저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 수를 늘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전교를 위한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을 세상 한가운데서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복음화의 첫걸음이며, 그런 삶은 자연스럽게 사회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써 주변을 서서히 복음화시켜 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충실한 삶 가운데,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과 실천만큼 주변을 복음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은 없다고 믿는다. 얼마 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조문하러 온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신자가 아님에도,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시절부터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애쓰신 김추기경님을 존경했기에 조문을 하러 왔다고 한 것은 좋은 보기라 생각한다. 실제로 80년대에 가톨릭 신자수가 크게 늘었으며, 가톨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사회전반에 각인된 때도 이때부터다.
이런 뜻에서 이번 통계가 단순히 우리들의 성과를 자축하는 결과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화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겨보고 우리 모두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