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광야로 간 까닭은?

가톨릭부산 2015.11.02 11:04 조회 수 : 63

호수 1982호 2009.03.01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교회에서 40은 의미 있는 숫자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간 땅이 물에 잠겼고 모세는 40일간 시나이산에서 머물렀다. 공생활 전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셨고 부활 후에는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교회에서 40일은 침묵과 뉘우침, 그리고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특별한 기간이다. 

속세에서도 40 이란 숫자는 특별하다. 나이 40을 불혹이라고 해서 비로소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인생의 중심을 잡는 나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가는 인생이 어디 있던가. 매번 갈등과 불안 속에 흔들리며 조금씩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예수도 40일간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다. 메마른 광야에서 홀로 악마와 마주해 단호히 유혹을 물리치셨다. 그리고는 인류구원의 사업에 곧장 나섰다. 광야는 죽음의 땅이지만 예수께서 유혹을 이겨내신 광야는 구원과 부활의 길목이 된 셈이다.

광야는 이스라엘에만 있지 않다. 물질과 권력의 유혹은 늘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고 흔들리게 한다. 속도와 결과만을 중시하는 바쁜 세상에서 유혹을 유혹으로 인식하지 못 할 때도 많다. 부정과 불륜으로 가득 찬 이른바 막장 드라마. 몸과 마음을 해치는 과도한 술자리. 필요보다는 욕구를 채우기 위한 불필요한 소비. 지옥 같은 입시와 과정을 무시한 경쟁 등으로 우리의 일상은 점차 광야가 돼 가고 있다. 

옛날 인디언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춰 서서 달려온 길을 되돌아봤다고 한다. 급히 오느라 자기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 했을까봐 따라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지금이 그 때이다. 일상의 분주함과 번잡함을 내려놓고 침묵과 절제 속에 하느님이 내어주신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때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일상 속에 쌓아놓은 욕심과 탐욕의 더미를 치워야 할 때다. 부활(復活)의 한자 부(復)는 ‘회복한다’, ‘돌아간다’ 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부활의 영광에 함께하기 위해선 하느님이 지어주신 사랑스런 자녀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인류구원을 위해 고통과 침묵의 광야로 외로이 걸어가신 예수 발걸음의 의미부터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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