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주변을 돌보기는커녕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다 놓아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구나 가족 중에 난치병이라도 걸린 사람이 있다면 정상적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몸 져 누운 본인도 아픔으로 고통스럽겠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 이들은 또 다른 더한 괴로움과 고통을 느낀다. 부모로서 아이의 고통을 대신 할 수 없고, 자식으로서 부모의 고통을 덜어 드리지 못해 힘들어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 세월이 길어지면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느껴 경우에 따라서는 가정이 경제적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고, 치료받고 회복되는 것도 돈 많은 부자들보다 훨씬 어렵다’라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건강은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느 다른 권리들 보다 중요하고 우선 되어야 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높은 자리에 올라도 건강을 보장받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는 미국 민간 의료 보험 조직의 부조리한 폐해의 이면을 폭로하며 열악하고도 무책임한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수익 논리에 사로잡혀 이윤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한 미국 의료 보험 제도 속의 관련 기관들은 돈 없고, 병력이 있는 환자를 의료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하여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사람의 목숨을 걸고 장사를 하는 기막힌 미국의 건강 보험 실태를 보고 정말 놀랐다.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이 건강 복지에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참 무서웠다. 의료 시장에서 국민의 건강은 하나의 상품이었다. 시장에 맡겨진 국민의 건강이 돈 없고 가난한 사람은 치료 받지 못하는, 그 어떤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영화 내용에서 시장 만능 주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느끼게 했다.
2월 11일은 ‘세계 병자의 날‘ 이다.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의료 지원이 되어야 함은 물론, 어느 곳에서도 어떤 경우라도 병들고 아픈 사람은 치유 받아야 된다. 전쟁의 피해자, 거리의 노숙자, 이주 노동자, 빈곤여성들, 아동이나 노인 등 누구라도 건강을 침해받고 있다면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믿음과 신뢰로 그들에게 적극적 의료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