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의 끝 지점에 서게 됐다. 달랑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며 마음을 여미는 때다.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내년에는 그분 보시기에 더욱 합당한 삶을 살아야지 하는 자성의 마음을 갖게 된다.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기에 끝마무리 지점에서 다시 한 번 돌아보라는 권고의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기초 교회인 가정이 바로 서야 교회, 사회, 인류가 바로 선다. 그러나 핵가족화로 붕괴된 오늘날의 가정은 60년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제시됐던 가족제도가 아니다. 부모 자식간 대화가 단절되고 계층간의 관심이 소홀하다보니 인간관계 또한 따스한 정의 무게보다는 계산이 우선시하게 됐다. 가정 폭력, 부부 갈등, 자녀 교육, 고령화 사회로 인한 노인 문제 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정 교회의 모습은 어른 따로, 아이 따로 가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포근한 사랑의 온실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목수인 아버지 요셉을 따랐듯이, 어머니 마리아께 순명했듯이 부모와 자녀들은 예수님 성가정의 모습을 항시 유념해야할 것이다. 가정은 본시 아늑한 꿈의 보호소, 집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체 거처로서의 의미가 지켜졌을 때만이 필요물이 아닐까. 최후의 보루, 가족만은 사랑으로 뭉쳐야 모두가 산다. 때 묻은 목숨들이 그늘진 얼굴로 모여 살면 그것은 피를 말리는 형벌이 아니랴.
얼마 전 낯선 고장의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아침 산책을 위해 습관처럼 거리에 나왔는데 어스름한 신 새벽인데도 교회에서 나온 듯한 길거리 선교단이 탁자를 펼치고 서 있었다. 그들은 웃는 얼굴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커피를 전하며 한 장의 팸플릿을 쥐어 주었다. 안내장을 따라간 곳에는 숲 속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삼각 지붕의 교회가 서 있었다. 예배당의 빈 성전에 들어섰을 때 침묵 가운데 현존하는 하느님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비록 감실이 없어도 정갈하게 정돈된 성전과 방금 새벽기도를 마친 듯한 은은한 불빛이 기도하기에 쾌적한 분위기를 만들어서였는지도 몰랐다. 그때 느꼈던 그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자족감 안에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라는 성서 말씀을 떠올렸다. 믿는 이들의 집은 바로 하느님의 집이 아닐까. 기도하며 말씀을 실천하는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