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연인 아사코를 스위트피이에서 장미, 시들어져 가는 백합으로 비유한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그리움과 사랑이 묻어나는 수필 ‘인연’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금아의 수많은 수필 가운데 특히 ‘인연’을 좋아한다. 색 바랜 앨범에서 아련한 추억을 꺼내보는 것 같은 야릇한 향수를 느끼기도 하고 인연의 소중함을 담담하게 그려낸 그의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내 가슴 깊이 묻혀 있던 자아를 발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이면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소중한 인연이 있고 그 관계를 마음 깊이 생각하며 산다. 요즘은 경제적 불황으로 국가와 사회는 물론 가정과 개인 모두가 우울하고 힘겹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 봉착했을 경우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어두운 면보다는 밝고 희망적인 모습을 보도해야 마음이라도 편안해 질 것이다. 나는 방송과 인연을 맺다보니 자연히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반응을 궁금하게 여기면서 또 다른 정보를 찾아 시정을 누비고 다니느라 하루가 짧다. 얼마 전에는 인근 지역에 사는 기러기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지역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기사화하는 것은 물론 그가 살아온 배경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나도 보도를 해야 하나 마냐 고민했지만 편집회의에서 기사화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도 남은 가족에게도 좋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기사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더욱 우울하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독거노인에게 연탄을 배달하고 쌀과 김장을 나누는 모습을 방영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에서 미담거리를 찾아보자고 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나 기아에 허덕이며 평생을 전쟁 치르듯이 살아가는 아이들, 그들도 기구한 운명의 인연 때문에 그 땅에서 살고 있다. 또한 그들을 돌보기 위해 열대 풍토병에 시달리면서 의료 봉사를 하는 제2, 제3의 슈바이처들도 보람과 사명감 그리고 인연 때문에 고생인줄 모르고 수고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든 불교에 심취하든 또 다른 종교를 가지든 모두 종교와의 깊은 인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부모의 종교를 따르거나 배우자의 권유로 종교를 통일하기도 하고 친구 때문에, 또 다른 특별한 이유로 믿음을 갖기도 한다. 성당이나 교회, 절을 찾게 되면 뜻이 맞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 가운데서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되며 마음의 평화를 구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주보를 통해서 많은 형제 자매들을 만났다. 주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평범한 일상의 글들로 지면 낭비나 하지 않았는지 염려가 된다. 그 동안 졸고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송구할 뿐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다.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