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가던 날

가톨릭부산 2015.10.28 09:39 조회 수 : 42

호수 1967호 2008.11.30 
글쓴이 김 루시아 수녀 

소풍가는 날이면 비가 올까 걱정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던 기억은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우리 어린이들도 입학하여 6개월을 다니는 동안 놀이공원으로 소풍가는 날이 한번 있는데 소풍가는 날이 정해지면 매일 매일 확인하며 손꼽아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던 소풍가는 날! 새벽부터 쏟아지던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걱정하고 있는데 6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어린이들이 9시가 되기도 전에 떠나자고 재촉한다. 시내라도 한 바퀴 돌아오려고 출발은 했는데 흥분한 어린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갈 수가 없어 고민하다 백화점으로 갔다. 개장 전이어서 기다리다 첫 손님으로 들어서니 반갑지 않은 눈치를 주었지만 막지는 않기에 모른 척하고 들어갔다. 생전 처음 보는 깨끗하고 넓은 공간과 화려함에 잠시 멍해하더니 일분도 안 되어 60명의 어린이들이 대리석 바닥에 눕고 뒹굴고 뛰어다니며 신기한 상품들을 구경하는 동안 손님과 안내원들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우리어린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놀이기구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태워주려 하니 안내원들이 달려와 말리지는 못하고 하나씩 올려주고 내려주며 제발 한번만 타라고 한다.

소풍 간다고 한껏 멋은 내고 왔지만 낡은 옷차림에 빌려 신은 신발들이 문제를 일으켜 발이 아프거나 벗겨져 들고 다녀야 하고 쫄신은 코가 빠져 코를 끼우느라 놀지 못하는 어린이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바지 고무줄이 헐렁해져 한손으로 움켜쥐고 뛰어노는 모습은 가난의 서러움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쓰레기 더미에서도 맨발로 놀던 어린이들이기에 깨끗한 이곳에서 신발을 벗거나 들거나 상관하지 않고 2시간 정도 신나게 놀았다. 돌아갈 생각이 없는 꼬마들을 재촉하여 차에 태우고 간식을 나눠주니 그때서 배가 고픈지 밥을 달라고 한다. 소풍을 간다 해도 도시락이나 간식을 준비할 여유가 없기에 어린이 집에서 모든 것을 준비를 해야 한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나눠주니 세상의 어느 어린이들이 지금의 이 어린이들만큼 행복하겠는가?

대림절이 시작되는 오늘! 소풍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주님을 기다리고 소풍에서 느끼는 행복만큼이라도 주님을 만났을 때 기쁨이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 한 후원자가 운동화 2,000개를 보내준다고 했어요. 맨발의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면 활짝 웃으며 행복해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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