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가을느낌

가톨릭부산 2015.10.28 09:37 조회 수 : 23

호수 1966호 2008.11.23 
글쓴이 김욱래 아우구스티노 

언제나 가을은 쓸쓸하고 뭔가 비워가는 듯한 알싸한 아픔이었다. 얼마 전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엔 밝은 달빛이 가득했다. 달빛이 유난히 따뜻해 한참 올려다보며 그 포근함을 가슴 한 가득 담아 보았다. 왜 이리 달빛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걸까. 아마 늦은 가을의 쓸쓸함과 차가움이 달빛을 따뜻하게 느낄 수 있게 한 이유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겐 가을이 쓸쓸함과 차가움으로 기억되지만 곡식과 열매를 떠올리는 누군가에게 가을은 풍성하고 넉넉하지 않을까. 이렇듯 마음에 따라 가을느낌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 동안 나는 타인들 역시 나와 같은 가을을 느끼고 있으리라 단정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방적 관점은 자신을 좁게 만들뿐만 아니라 주변을 아프게 하거나 강제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관점이 최선이고 진리에 근접한 것이라고 믿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확정해서는 안 되고 타인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이를 테면 계절의 변화를 알고 계절의 맛을 아는 순간 철이 들었다고 한다면, 이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진리로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철이 든다는 것은 순수함의 상실일 수도 있다. 세상모르고 살던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기로 돌이키고픈, 즉 무겁고 오염된 삶의 변화로 철이 들어감을 아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려는데 한 친구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하고, 다른 한 친구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한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리일까?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가치들이 세상에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고 분명할 것인가. 어느 정도 그런 ‘가치 서열’이 정돈되어 있지 않다면 세상은 혼돈과 갈등 그 자체일 터이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가 갖는 가치 서열도 늘 동요하게 마련이며, 가치 서열 간에는 균열과 갈등이 있다. 친구나 연인들의 다툼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가치 체계나 가치 서열의 갈등이다. 그러나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사람들 사이에 애정의 깊이를 더해주는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옛날에 대홍수가 있었는데 이 홍수에 휩쓸린 원숭이와 물고기가 있었다. 원숭이는 다행히 나무 위로 올라가 홍수를 피할 수 있었고, 안전한 나뭇가지에서 급류를 거슬러 버둥대는 물고기를 보았다. 선의를 가지고 그는 팔을 뻗어 물고기를 건져내었다. 그러나 결과는 물고기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렇듯 원숭이의 선의는 고마운 것이었지만 일방적이었다. 내가 바라보는 인간, 자연, 신에 대한 믿음이 최선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늦은 가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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