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20호 2018.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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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철호 신부 |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면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마태 27,46)라고 외칩니다. 스스로 원하신 수난인데 왜 이렇게 외치셨을까요? 하느님을 원망하며 인간적 약점을 드러낸 말인지요?
염철호 신부
예수님의 외침은 시편 22,2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시편 22장에 따라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지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한 일(마르 15,24)도 시편 22,19에 언급된 내용입니다. 사실, 시편 22장은 억울한 폭력 앞에서 하느님께 부르짖는 이의 노래였습니다. 악당들로 인한 환난 앞에서 하느님께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주십사, 구원을 주십사 간청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시편 22장은 중반(22절)부터 주님께서 기도하는 이의 응답을 들어주셨음을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가련한 이를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실제, 시편 22장은 탄원의 노래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시편을 노래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이 폭력 앞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하느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되살릴 것임을 신뢰하며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온전한 인간이었기에 십자가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잔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기도 했습니다. 시편 22,2의 외침에서도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신뢰하셨기에 기꺼이 죽음의 잔을 마십니다. 그리고는 시편 22장이 노래하던 그대로 부활하십니다. 이렇게 시편 22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시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