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07호 2016.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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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경완 신부 |
이해하지 못하면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래서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를 좀 이해시켜 주십시오.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mederico@cup.ac.kr
질문을 받고“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는 우리가 순명이라 칭송하는 성모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이런 순명의 덕은 몰이해 위에서 생겨납니다. 이해된다면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만, 이해되지 않을 때 태도가 달라집니다. 순명을 덕으로 여기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 51)는 태도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목자들이 전한 천사의 말도, 소년 예수를 성전에서 다시 찾았을 때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몰랐느냐는 아들의 반문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받아들입니다. 배척하지 않습니다.
우리 앎은 분명한 범위와 한계가 있고, 그 너머에 있는 앎은 우리 능력을 벗어나 있습니다. 언제 지진이 다시 올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끝이 날지 우리는 알지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얕고 좁은 게 우리의 앎인데, 그 앎 안으로 들어와야만‘이해’가 됩니다. 모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삶은 아주 작은 앎과 그보다 훨씬 더 큰 모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 더 큰 몰이해를 성모님은 배척하지 않고‘마음속에 간직’하며 그냥 받아들입니다. 진짜로 배우고 싶은 위대하고도 지혜로운 삶의 태도입니다.